2007년 대학 동문으로 만난 A씨와 B씨는 지난해 2월부터 연인 관계가 됐다. 그러나 A씨는 B씨가 자주 다른 남자들과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가지는 것에 불만을 가졌고, 3개월쯤 뒤부터 B씨에게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B씨는 A씨를 "흉기를 들이대며 성폭행했다"는 이유로 폭력 및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성폭행한 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 재판부는 "B씨의 상해 정도와 당시 A씨의 감정 등을 고려하면 B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며 성폭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엉뚱한 상황이 발생했다. B씨가 지난 3월 'A씨를 꼭 풀어주세요. 저를 때리고 모함한 것이 너무 견딜 수 없고 속상해서 사실이 아닌 것을 말했습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B씨를 법정으로 불렀는데, B씨는 "(글을 쓸 당시) 악마인지 남자인지 (누군가가) 그렇게 쓰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목소리를 듣고 글을 썼다"고 답변해 재판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박삼봉)는 5개월여 동안 A씨의 성폭행 혐의 관련 증거를 모두 재검토했다. 그리고 18일 A씨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실상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B씨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릴 당시의 정황 등을 고려하면 자책감에 의해 자신의 허위진술 사실을 자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성폭행에 대한 B씨의 진술은 고소 전 작성한 사건진술서와 최초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이후 진술이 모두 다르다"며 "성폭행을 입증할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B씨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이상 원심의 판결을 파기한다"고 판단했다.
이미 수사 과정에서 1년 가까이 구금됐던 A씨는 선고 직후 석방됐고, A씨와 검찰 모두 상고하지 않아 항소심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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