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사업과 질병 예방 등을 위해 주로 쓰여야 할 국민건강증진기금 중 상당부분이 기금 조성 목적과 무관한 기술개발(R&D)사업 등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의 75%는 담배 한 갑당 354원씩 부과되는 담배부담금으로 충당된다.
18일 보건복지부와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3년 예산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2013년 책정된 기금 예산 2조748억원 중 절반 정도인 1조198억원이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사업에 배정됐다. 이 사업은 건강보험 가입자와 피부양자들의 급여비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금연 교육, 영ㆍ유아 필수 접종 약품비 지원, 결핵 예방사업 등 실제 기금 조성의 목적인 건강증진과 관련된 사업에는 전체 기금 예산의 30%에 불과한 6,188억원이 책정됐다.
기금의 절반 정도를 쓰는 건강보험 가입자 급여 지원은 흡연자들도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부적절한 기금의 사용처로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질환극복기술 개발사업, 의료기술 개발사업, 한의약 선도기술 개발사업 등 기금 목적과 별로 상관없는 기술개발사업에 투입된 예산이다. 9개 기술개발사업에 기금 예산의 12% 정도인 2,590억원이 배정됐다. 줄기세포 연구와 신약개발 지원 등 질환극복기술 개발사업에 890억원, 한방 임상 인프라 구축과 한약제재 임상연구 등 한의약 선도기술 개발 연구에 90억원 등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용처를 규정한 국민건강증진법은 기금이 최우선적으로 '금연 교육 및 광고 등 흡연자를 위한 건강관리사업'에 쓰이도록 규정했다. 보건통계의 작성ㆍ보급과 보건의료 관련 조사ㆍ연구 및 개발에 관한 사업에 쓸 수 있다는 규정도 있으나, 실제로 기금 예산이 배정된 기술개발사업들은 이 목적과 어울리지 않는다. 기금이 쓰여야 할 청소년이나 군인 대상 흡연 예방 및 금연 교육을 하는 국가 금연지원 서비스사업 예산은 올해 65억원에서 40%나 깎인 39억원이 배정돼 이율배반적이다.
또한 흡연자 감소로 담배부담금 수입이 해마다 줄어들면서 기금 재정도 위기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1조6,376억원이었던 담배부담수입금은 2010년 1조5,848억원, 지난해 1조5,690억원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지난해부터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 700억원을 끌어오기 시작해 올해는 2,200억원을 빌렸고 내년에도 3,386억원을 차입할 예정이다. 이자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난해 13억원의 이자를 지급했고, 올해 이자비용으로 85억원, 내년에 194억원이 지출될 예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운용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매년 수입보다 지출이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목적이 불분명한 사업에 지속적으로 거액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셈이다. 기금 재원을 더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이학영 통합민주당 의원 등은 현재 담배부담금이 부과되지 않는 파이프 담배, 씹는 담배 등 모든 담배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경우 163억원 정도의 추가 수입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예산 편성을 할 때 연구개발사업비는 기금이 아닌 일반회계로 편성할 것을 요구하지만 재정당국이 난색을 표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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