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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을 더 빠르게" 세계는 지금 속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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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을 더 빠르게" 세계는 지금 속도전

입력
2012.11.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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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는 가정용 컴퓨터로는 100년 이상 걸릴 작업을 하루 만에 해내는 꿈의 장비다.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과학자들은 보통 정보 처리 속도를 기준으로 세계 500위 내의 컴퓨터를 슈퍼컴이라고 한다. 언뜻 슈퍼컴은 정부나 연구소가 전문적인 일 처리를 할 때 이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병 원인 분석에서 블랙홀 충돌 연구까지

신생아 1,000명 가운데 1명 정도가 선천성 심장기형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라스 라슨 교수 등 국제공동 연구팀은 슈퍼컴을 이용해 수천 개의 유전자 변이와 환경 요인이 어떻게 심장기형을 일으키는지 분석했다. 라슨 교수팀은 슈퍼컴을 활용해 조현병(정신분열병)ㆍ자폐증 등 정신질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일반인에게 감기는 별다른 질환이 아니지만 천식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호주 멜버른대 마이클 파커 교수팀은 아보카 슈퍼컴을 활용해 감기약 효과를 검증했다. 감기약은 바이러스를 둘러싸고 있는 캡시드라는 껍질에 결합해 작용하는데 그 메커니즘을 슈퍼컴으로 알아냈다. 이를 통해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신약이 개발되고 있다.

블랙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주위의 모든 물질을 빨아 들이며 빛조차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두 개의 블랙홀이 만나면 이중 궤적을 그리다가 중력파 등으로 에너지를 잃고 합쳐진다. 태양 질량의 백만 배나 되는 블랙홀의 충돌로 새로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이런 블랙홀 충돌 시 시공간 왜곡 현상을 아직 직접 관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미 항공우주국(NASA) 존 베이커 박사팀은 슈퍼컴으로 블랙홀 충돌의 전체 과정을 재현해 냈다.

가정에 보급된 김치냉장고도 슈퍼컴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김치맛을 잘 내기 위해선 냉장고 크기와 온도, 김치의 양, 숙성 기간 등을 따라 수많은 실험을 해야 하는데 슈퍼컴이 이를 대신했다. 슈퍼컴으로는 극초단타 주식거래도 할 수 있고, 블랙홀 충돌과 핵폭탄으로 소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지도 예측할 수 있다.

수천 개의 컴퓨터를 이어 붙여 제작

세계 최초의 슈퍼컴은 1971년 미국에서 개발한 '크레이-1'. 계산 속도는 160메가플롭스(MFLOPSㆍ1초 당 100만 번 계산) 수준이었다. 초기 슈퍼컴은 하나의 큰 컴퓨터 안에 여러 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기억장치 등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개발 기간이 길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요즘은 컴퓨터 여러 대를 고속 네트워크로 이어 붙이는 '병렬형(클러스트형)' 방식으로 만든다. 개발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한국이 보유한 타키온II는 3,400개의 서버(기업용 컴퓨터)를 이어 붙였다. 하나의 서버에는 가정용 컴퓨터에 흔히 탑재된 펜티엄급 CPU가 두 개씩 들어 있다. 이지수 KISTI 슈퍼컴퓨팅 센터장은 "3,400개의 서버가 일을 나눠서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도록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12~15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12년 슈퍼컴퓨팅 학술대회'에서 미국 오크 리지 국립연구소의 '타이탄'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로 선정됐다. 세계 1위를 차지한 미국의 타이탄은 1만8,688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 처리장치(GPU)를 사용했고, 계산 속도는 17.59페타플롭스(PFLOPSㆍ초 당 1,000조 번 계산)나 된다. 이는 초 당 1경7,590조 번의 계산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해담'(기상청ㆍ78위) '해온'(기상청ㆍ79위) '타키온II'(KISTIㆍ90위) '천둥'(서울대ㆍ277위) 등 모두 4대의 슈퍼컴이 500위에 들었다. 하지만 해담, 해온, 타키온II는 모두 미국 기술로 제작됐다. 반면 천둥은 이재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팀이 자체 기술로 만든 국내 첫 '토종' 슈퍼컴이다. 이 교수는 "천둥에 사용된 기술을 이용하고 규모를 늘리면 세계 30위권 슈퍼컴을 저비용으로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슈퍼컴 개발 미국ㆍ일본ㆍ중국 3파전

슈퍼컴을 국력의 상징처럼 여기면서 각국의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2010년 11월에는 중국의 '톈허(天河)-1A'가 2.57페타플롭스 성능으로 10년 이상 미국이 독점하던 세계 1위 슈퍼컴 자리를 넘겨받았다. 2011년에는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만든 'K 컴퓨터'가 세계 최초로 1초 당 1경 번의 계산 속도를 달성하면서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

그 후 다시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세콰이어'와 오크 리지 국립연구소의 '타이탄'이 차례로 1위에 오르며 미ㆍ중ㆍ일 삼파전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도 뒤질세라 2020년까지 엑사플롭스(EFLOPSㆍ1초 당 100경 번의 계산) 단위의 성능을 가진 세계 최상위급 슈퍼컴을 구축하기 위한 '몽블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세계 1위 외에도 다수의 슈퍼컴을 연구ㆍ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섟?500위 내 슈퍼컴의 국가별 보유 대수는 미국이 절반인 250대로 가장 많고 이어 중국(72대) 일본(32대) 영국(24대) 프랑스(21대) 독일(19대) 순이다. 4대밖에 보유하지 못한 한국은 '개발도상국' 수준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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