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두 아이에게 46억년의 지구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구를 마흔여섯 살의 여자로 상상해 봐. 처음으로 생물이 나타났을 때 지구여자는 열한 살이었단다. 너희들처럼. 지렁이나 해파리 같은 동물이 나타난 건 마흔이 되었을 때야. 공룡들은 마흔다섯이 넘어서야 돌아다니게 되었지. 불과 여덟 달 전이야. 그리고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건 겨우 두 시간 전이었단다."
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월성 원전 1호기의 수명이 내일로 종료된다고 하니 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수명은 30년. 지구여자의 시간으로 본다면 눈 깜짝할 사이쯤 될까. 그런데 그 30년 동안 쌓인 핵폐기물이 해롭지 않은 수준으로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0만 년. 인간의 문명이 시작된 게 지구여자의 삶으로 2시간 전인데, 그 5배가 넘는 시간이 훌쩍 더 지나야 하는 것이다.
이 위험천만의 쓰레기를 아무리 땅속 깊이 파묻는다 한들 10만 년 사이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제가 어디 인간의 실수뿐이겠는가. 10만 년이라면 대지진이 천 번은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지구여자에게 이런 일쯤이야 원래 감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감기에만 걸려도 목숨이 위태로운 약골이 되고 만 셈이다.
지구여자의 입장으로서는, 체질 개선을 위해서라도 인간이라는 기생충을 하루빨리 박멸하고 싶어 할 것만 같다. 마음이 어둡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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