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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공정질서 확립'이 경제민주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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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공정질서 확립'이 경제민주화인가?

입력
2012.11.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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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4월 총선에서 승리한 데는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불리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역할이 컸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근혜 후보가 그를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하고 경제민주화를 정강정책의 맨 앞에 내세우면서, 국민들에게 새누리당이 변화하고 있다는 인식을 뚜렷이 심어준 것이다.

물론 상당수 국민들은 반신반의했다. 김종인 위원장 등 극소수를 빼면 박 후보의 핵심 측근들이 하나같이 부자 감세와 규제 완화를 부르짖는 성장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공천한 인물들도 경제민주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보수 일색이었다. 그가 시장주의자인 이한구 원내대표와 김 위원장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의구심을 키웠다. 김 위원장이 언젠가 용도 폐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박 후보의 입장은 단호했다. "과거의 잘못된 것들과 확실히 단절하기 위해 정강정책도 시대와 국민의 요구에 맞게 내놓았다.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의 바뀐 정강정책이 추구하는 핵심가치 중 하나다. 확실하게 실천해 나가겠다."

그의 다짐은 허풍이 아닌 듯했다. 박 후보는 7월 출마 선언 이후 꾸며진 대선 캠프에서 김 위원장을 최고 정책 책임자로 내세웠다. 당연히 국민들은 박 후보가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를 적극 지지하는 걸로 받아들였다. 김 위원장이 내세운 경제민주화의 요체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다. 개발독재 시대 이래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재벌 중심의 성장전략이 세계 최고의 자살률, 중산층 붕괴, 600만명의 비정규직과 100만명의 청년백수, 1,000조원을 웃도는 가계부채 등 국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재벌에 의존하는 성장으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재벌 개혁을 통해 성장의 과실이 고루 퍼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박 후보가 16일 발표한 경제민주화 실천공약에선 기존 순환출자 지분의 의결권 제한, 대기업집단법 제정, 계열사 지분조정명령제, 경제사범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재벌 총수ㆍ임원 연봉 공개 등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핵심 정책이 모두 빠졌다. 재벌의 기득권은 보장해주되, 앞으로 반칙을 저지르면 엄정히 다스리겠다는 접근인 셈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이 주도하는 성장 만능의 경제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꿔보자는 개념인 만큼, 사실상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내부 쇄신파 의원에게서 "경제민주화는 이제 끝난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경제민주화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의 상실감은 말할 것도 없다.

박 후보의 유턴은 최근 재계와 보수층을 중심으로 부각된 경제위기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내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기업들의 투자가 중요하니, 재벌을 옥죄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야권의 단일화 공세에 흔들리는 보수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박 후보가 제시한 해법은 경제민주화가 아닌 '공정거래 질서 확립'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존 제도의 틀 내에서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으로, 그간 수없이 시도됐던 실패한 방식의 재연일 따름이다.

우리는 역사적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재벌 중심의 성장 전략이 국민 다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게 분명해지면서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패러다임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박 후보도 출마선언문에서 "국가는 발전했고 경제는 성장했다는데 나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나의 행복은 커지지 않았다"며 근본적인 해법의 모색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경제민주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역사의 반동이 잠시 발목을 잡을지는 몰라도, 그 도도한 흐름을 역류시킬 수는 없다. 30여 년간 지구촌을 지배했던 신자유주의가 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지금,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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