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시진핑(習近平)에게 공산당 총서기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함께 물려줌으로써 중국 권력승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후진타오가 전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처럼 군사위 주석을 당분간 유지하면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후진타오는 깨끗한 퇴진을 선택했다. 후진타오가 장쩌민 등 원로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자신이 속한 계파의 미래를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0년 전 후진타오는 장쩌민으로부터 당 총서기직를 물려받고 이듬해 3월에는 국가주석에 올랐다. 하지만 장쩌민은 권력승계 뒤에도 약 2년간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 권력의 3대 축인 당(黨)·정(政)·군(軍) 중 군을 대표하는 군사위 주석직은 중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을 남긴 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 (毛澤東)은 마지막까지 군권을 내놓지 않았으며 2세대 덩샤오핑(鄧小平)은 국가주석과 당총서기직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군사위 주석직 하나만 유지한 채 최고 지도자로 군림했다. 군사위 주석에 오르지 못하면서 후진타오는 한동안 '반쪽 권력'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고 군권을 틀어쥔 장쩌민은 '상왕'이라 불리며 막강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후진타오의 군사위 주석직 동시승계는 원로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사히(朝日)신문은 "후 주석이 군사위 주석직에서 물러나는 조건으로 은퇴한 고위 인사의 정치개입을 금지하고 은퇴시기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규정을 관철시켰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권력 핵심부인 베이징(北京) 중난하이(中南海)에 있는 장쩌민의 집무실도 철거하기로 했다. 임기 중 원로들의 영향력에 시달려온 후진타오가 동반퇴진이라는 '물귀신 작전'을 성공시킨 셈이다.
권력승계 과정에서 잡음과 갈등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후 주석이 장쩌민이 권력을 승계했을 때 벌어졌던 논쟁을 피하고 좋은 평가를 남기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정치분석가 천즈밍(陳子明)은 "후 주석이 권력을 포기한 것은 권력 이양에 새로운 선례를 만드는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후진타오는 14일 폐막한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과학적 발전관'을 당장에 포함시키며 명예로운 은퇴의 발판을 마련했다. 자신의 대표 이념인 과학적 발전관이 마르크스ㆍ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3개 대표론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후진타오의 측근들이 이미 군의 요직에 진출한 것도 군권을 내놓는데 부담을 줄여줬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후진타오와 가까운 판창룽(范長龍) 지난(濟南) 군구사령원과 쉬치량(許其亮) 전 공군사령원이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올랐으며 지난달에는 측근으로 분류되는 팡펑후이(房峰輝) 전 베이징(北京) 군구사령원이 작전 총괄권을 가진 총참모장에 기용됐다.
후진타오의 깔끔한 은퇴는 자신이 속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미래를 위한 정치적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후진타오 덕에 임기 초부터 힘을 얻게 된 시진핑 입장에서는 정치적 빚을 진 셈이기 때문이다. 5년 후에는 태자당이나 상하이방에 속한 장더장(張德江), 위정성(兪正聲), 류윈산(劉雲山), 장가오리(張高麗), 왕치산(王岐山)이 모두 68세를 넘겨 연령 규정에 따라 상무위원에서 물러나는 것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차기 상무위원 진입 주자로 거론되는 리위안차오(李源潮), 왕양(王洋), 후춘화(胡春華) 등은 공청단에 속하기 때문에 후진타오는 5년 후 공청단의 약진을 기대할 수 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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