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모습을 드러낸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의 면면은 최고권력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막후 실세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간의 권력투쟁에서 장 전 주석이 완벽한 승리를 거뒀음을 보여준다. 장 전 주석은 자신이 이끄는 상하이방 상당수를 상무위원에 밀어 넣는데 성공한 반면, 후 주석 직계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은 상무위원에 연임된 리커창(李克强ㆍ57) 부총리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먼저 후 주석이 속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계열의 왕양(汪洋ㆍ57) 광둥(廣東)성 서기와 리위안차오(李源潮ㆍ62) 당 조직부장의 탈락이 주목된다. 둘은 최근까지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했으나 막판 태자당과 상하이방에 밀렸다. 왕 서기와 리 부장이 상무위원에 선임됐다면 공청단이 다수파를 차지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이들이 다른 상무위원들보다 비교적 젊어 5년 후 상무위원에 진입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지도부에 새로 진입한 인사들 중 서열 3위 장더장(張德江ㆍ66) 부총리는 상하이방을 대표하는 인사이고, 5위 류윈산(劉雲山ㆍ65) 당 선전부장은 공청단과 상하이방 경계에 있지만 상하이방에 가깝다는 평가다. 7위 장가오리(張高麗ㆍ66) 톈진(天津)시 서기도 3대 계파와 두루 넓은 인맥을 갖고 있지만 상하이방으로 분류된다.
상하이방과 함께 보수파를 양분하는 태자당(당 원로 자제 그룹)이 권력 전면부에 대거 등장한 것도 후 주석의 패배와 크게 대비된다. 서열 1위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를 비롯해 4위 위정성(兪正聲ㆍ67) 상하이(上海)시 서기, 6위 왕치산(王岐山ㆍ64) 부총리가 그들이다.
결과적으로 후 주석이 자파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승부수로 관철시켰던 ‘상무위원 7인 체제’는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좁히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후 주석은 올 여름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때 9인 상무위원 체제를 7인 체제로 변경하자고 제안하며 공청단의 수적 우위를 노렸다. 그러나 장 전 주석의 영향력을 이기지 못하고 신임 상무위원에 공청단 인사를 한 명도 진입시키지 못했다. 2007년 상무위원이 된 리커창 부총리(차기 총리)가 권력 서열 2위에 오른 것이 후 주석의 유일한 성과다.
중국의 정치분석가는 “후 주석이 (공청단 탈락의 대가로) 리커창의 서열 2위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총리 내정자인 리커창은 관례라면 서열 3위에 올라야 하지만 후 주석의 요청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몫이었던 서열 2위를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넘버 2’에 등극했다는 것이다.
개혁 성향인 공청단의 몰락과 보수파인 상하이방ㆍ태자당의 권력 독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윌리 램 홍콩중문대 교수는 “중국 정치에서 의미있는 개혁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사라졌다”며 “(새 지도부가) 당의 권위에 도전하는 시도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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