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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별을 쫓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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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별을 쫓는 사람들

입력
2012.11.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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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순이'라는 표현이 있다. 속칭 '빠'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던 말이었으나, 2000년을 전후해서 스타를 좋아하는 열혈 소녀팬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오빠순이'의 준말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한때 '공순이'라 불렀던 기억과 겹쳐지면서, '빠순이'는 미성숙하고 주변적인 여성에 대한 조롱과 경멸을 내포하는 단어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이런 열혈 팬들을 '츄이싱주'라고 부른다. 추성족(追星族), 즉 '별을 쫓는 사람들'이다. 1989년 많은 젊은이들이 '소호대'라는 인기 그룹을 자전거를 타고 따라다녔던 것이 츄이싱주의 시작이라고 한다. 별, 즉 스타를 쫓는 팬이라는 뜻인데, 이들은 문자 그대로 따라다니며 열광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팬질'은 강하고 단순했다.

가수 아이유와 은혁이 함께 찍은 셀카 사진 한 장이 만만찮은 화제와 논란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대중문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젊은 남녀의 사진 한 장이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심드렁하게 말하겠지만, 별들을 쫓는 이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사건이다. 어디서 찍었느냐, 어떤 상황이냐, 해명을 믿어도 되느냐, 궁금한 것도 많고 의심도 강하다. 사진 속 눈동자에 비친 불빛을 확대해서 전등 모양을 찾고 이를 근거로 구체적인 장소까지 추론하는 정도니, 소위 '네티즌수사대'의 능력이 CSI 못지않다는 평가가 빈 말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든다.

빠순이나 츄이싱주는 점차 '팬덤'이라는 용어로 바뀌어졌다. 팬덤에 대한 체계적 논의를 시작했던 문화학자 존 피스크는 열혈 팬을 '과잉독자'로 칭하면서 팬덤의 생산적 측면에 주목한 바 있다. 열광하며 스타를 쫓아다니기만 하는 '생각 없는' 존재가 아니라 개인적, 사회적 정체성이 있는 사람들, 경우에 따라서는 능동적으로 시민적 실천을 하는 문화 소비자를 암시하는 용어로 새롭게 정의된 것이다. 이들은 대중문화를 저항적으로 수용할 줄도 알고, 스스로 텍스트를 생산하기도 한다. 작년 초, 전 기획사와 갈등을 겪고 있던 JYJ가 방송출연에 어려움을 겪자 팬들이 직접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했던 것도 변화한 팬덤의 한 사례이다.

그런데 아이유와 은혁을 쫓는 일부 팬들의 집착적 행동도 팬덤 활동의 일환으로 봐줘야 할까? '아진요'라는 카페를 개설하여 공공연하게 "진실을 요구한다"라고 선언하는 '팬질'이 과연 팬덤의 생산적 양상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간단명료하다. 이건 팬덤이 아니다. 1년 전 구입한 자동차가 애초의 광고만큼 연비가 나오지 않는다고 핏대 내며 항의하는 소비자에 가깝다. 물론 "돈 주고 구입한" 상품도 아니지만.

연예인이 공인인가 아닌가, 공인이면 프라이버시 침해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잠시 제쳐놓자. 노래가 아니라 이미지가 상품이 된 이 시대에, 과연 소비자의 권리는 어디까지이고 팬덤의 자리는 어디인지 먼저 질문해야 한다. '수사대'를 자임하고 심지어 당당하게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품의 가치를 따질 줄 아는 '현명한 소비자'라고 착각할지 모른다. 사실은 잡히지도 않는 별을 쫓아 산과 물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는 무모한 빠순(돌)이, 혹은 츄이싱주일 뿐이다.

광고주가 스타를 모델로 삼는 것은 그 '사람'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미지를 사는 것이고, 구입한 이미지는 상품에 덧씌워진다. 대중문화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스타의 이미지를 사고, 활용하고, 이를 전유하여 '생산'을 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의 패러디 영상물들은 돌발적으로 나온 스타의 새로운 이미지를 활용한 전형적 2차 생산물이다. 레고를 사서 공룡을 만들어보듯, 스타의 이미지를 구입해서 즐거운 놀이의 재료로 삼는 것이다.

조카처럼 귀여워하건 은밀하게 성애적 소녀로 상상하건,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이고 판타지이고 시뮬라크라이다. 스타의 이미지를 구입한 소비자가 스타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틀린 번지수를 상대로 흥분하지 말자. 정작 CSI처럼 집요하게 진실을 파악해야 하는 대상은 아이유가 아니라 대통령 후보들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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