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인생의 목표가 어떻게 되시나요"라고 툭 던진 질문에 불면증으로 필자의 클리닉을 찾아온 멋진 노신사 대답하신다. "딱히 목적이라 말할 것이 없네요. 나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주변에서 성공했다고 할만큼 돈도 명예도 얻었는데 요즘 들어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처럼 마음이 텅 빈 느낌에 허무합니다." 당신은 무엇이라 위로해 주겠는가.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과 비교해 보세요. 당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요"가 일반적인 대답인데, 도움이 되지 못할 듯하다. "주변에 하소연할 데도 없어요. 팔자 좋은 소리라 핀잔만 들을 테니, 그래서 더 외롭습니다"라 하시니.
우리 감성 시스템의 최우선 키워드는 '생존'이다. '일단 살아야 해, 살아야 복수도 하고 사랑도 하지.' 촌스럽지만 마음을 제법이나 뭉클하게 하는 감성액션영화의 단골 대사이다. 뇌의 상당 부분이 생존이란 기본에 충실하게 설계돼 있고, 빠르고 강력하게 살기 위해 반응한다. 그러나 생존 자체가 뇌의 설계 목적은 아닌 듯하다. 필자는 '가치'가 최종 삶의 키워드라 생각된다. 가치 없는 생존이라고 스스로 인식되는 삶은 우울과 허무를 만든다. 현재가 보릿고개 있던 과거보다 실제적인 생존이 어려워진 시대인가, 굶어 죽는 이 없으나 스스로 무가치함에 목숨을 끊는 이가 OECD 1등이니 머리가 어지럽다.
긴 역사의 인간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언어의 프레임 속에 갇혀 현대인은 살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이성적 언어의 프레임이 우리 감성을 과도하게 억압하니 실제 현실과 감성이 소통할 수 없게 돼버리는 질식 상태의 숨가쁨이 느껴진다. 그것에 대한 반작용인 '난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 거야'는 기분전환의 또 다른 통제일 뿐 본질적인 자유를 주지 못한다. 자유는 삶의 가치에 전념할 때 얻어지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 설정이 없는 열심 그리고 방향성 없는 감성적 자유 모두 허무로 우리를 이끈다.
"전에는 사는 대로 생각했는데 이젠 생각하며 살아요"란 이효리 씨의 말이 의미 있다. 돈과 인기, 가본주의의 최대 수확물이나 감성 가치는 명사로 설정될 때 끝없는 허무를 만드니,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돈과 인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며 유기견 돌보기 등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이씨의 모습에서 가치 있는 행복감이 느껴진다. 가치는 형용사와 부사로 이뤄져야 한다. 자신의 묘비명이라며 란 책을 낸 김미화씨, 죽음은 본질적인 순수와 통하고 그때 발견한 가치가 진정한 감성 가치이다. 멋진 제목이다.
마음이란 하나의 신호이다. 생존과 관련된 불안 신호를 만들어내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렇기에 마음 가는 대로 살다 보면 불안하고 허전해질 수밖에 없다. 불안의 보다 깊은 의미는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이기 때문이다. 가치에 마음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오늘 하루 나의 가치에 내가 전념할 때 불안한 마음은 뿌듯함과 보람으로 바뀌게 된다. 건강염려증이 있다면 '어느 병원을 가느냐'보다 '무슨 가치를 위해 이렇게 살고 싶은가' 자문하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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