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꼭 지켜야 하는 출근길엔 생각할 수 없지만, 퇴근길엔 천천히 걷기도 하고 창밖 거리를 내다볼 수 있는 버스를 타기도 한다. 그날도 버스를 타고 이미 어둑해진 차창 밖의 거리를 다소 감상적으로 바라보았다.
때마침 창밖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사위는 더 어두워졌고 버스 안은 좀더 소란스러워졌다. 미처 우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차창 밖의 비를 확인하며 다소 투덜거렸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아내가 쥐어주던 우산을 물리친 것이 후회됐다.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내 앞 좌석에는 할머니와 청년이 함께 앉아 있었다. 얼핏 보니 할머니는 손에는 잘 접혀진 우산이 들려져 있었다. 이윽코 몇 정류장을 더 갔을 때 할머니는 버스에서 내리려고 일어서셨다. 그런데, 할머니의 손에는 우산과 함께 들고 있던 작은 지갑만 들려 있을 뿐 우산은 들려 있지 않았다. 창밖의 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착한 인상의 옆자리의 청년이 황급히 할머니를 불러 세웠다. "할머니 우산 빠뜨리셨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그 청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학생, 이 우산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거여. 나보다 앞서 그 자리에 앉았던 이가 놓고 내린 겨. 누가 잃어버린 물건은 그냥 그 자리에 놔두는 게 상책이여."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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