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수능시험이 있었다. 수능시험을 하루 앞둔 뉴스는 잠시 대통령 선거나 내곡동 사저 등의 문제를 뒤로 하고, 하루 뒤에 있을 국가적 시험에 집중했다. 예상되는 난이도를 알려주고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긴장된 인터뷰, 그리고 교회나 사찰 등에서 자녀를 위해 기도에 열성인 어머니의 모습까지. 시험이 끝난 날에는 유명 입시 학원 컨설턴트의 인터뷰가 있고, 시험을 보고 나온 아이들의 '어려웠어요', '쉬고 싶어요' 같은 말이 이어진다. 적어도 수능 시험일 D-1과 D-DAY는 '교육'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입시제도는 늘 논란이 되고, 자주 바뀐다. 한국의 교육열은 막대한 사교육비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마 그 끝이 없을 것이다.
입시는 결국 교육의 문제인데, 우리의 경우 입시가 교육의 목적이 되고 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여러 방법 중에 하나로 우리는 고등학교를 다니고(그래서 좋은 학군이 필요하다) 고가 학원을 찾는다. 당연하다. 대학 입시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좋은 대학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전부가 아닐 뿐이지 상당하다. 그러니 우리는 교육보다 입시에 치중할 수밖에. 입시를 위한 교육에서는 당연히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주요 교과가 교육의 중심이 될 것이다. 예체능 교과는 운명의 시험일이 가까워질수록 자율학습 시간이 되기 쉽다. 학교도 선생님도 학부모도 심지어 학생도 그걸 원한다. 인생을 위하여.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의 원인을 폭력적 게임이나 일부 매체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이러한 현실이 학교를 팍팍하게 만들고 아이들의 폭력성을 키우는 것이다. PC방에서 두꺼비집을 내려 게임 유저의 폭력성을 실험했던 기자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우리 모두는 경쟁이라는 게임에 아이들을 집어넣고, 그들 중 못 견디는 학생을 골라내어 사회로부터 격리 혹은 도태시키고 있지 않은가.
예체능 수업의 확대는 아이들의 사고를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이다. 지금의 체육수업처럼 일주일에 두 차례(이마저 생략되기 쉽지만) 진행되는 수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학원-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이 '학교-체육관(혹은 운동장)-집'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바뀌어야 한다. 일주일에 두 시간이 아닌, 하루에 두 시간의 예체능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스포츠는 철저하게 엘리트 시스템으로 건축되어 있다. 해마다 등장하는 젊은 스포츠 스타, 올림픽과 같은 국제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는 청년들은 각 학교의 전통이 어린 배드민턴부, 양궁부, 축구부 등에서 맹훈련을 받은 선수들이다. 각 중학교 운동부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고등학교에 스카우트되고, 고등학교 성적이 좋으면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말하자면, 현행 학원 스포츠 또한 또 하나의 입시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 '슬램덩크'를 볼 때, 의아하고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저렇게 농구부가 많던가? 하는 의문이 첫째였고, 만화의 등장인물들 중에 우등생도 있었고, 그들도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학에 간다는 사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드라마로 '마지막 승부'가 있었다. 고교 농구 스타였던 손지창의 대학 입학 조건으로 '학교 동기 여럿의 동반 입학' 혹은 '현금'이 제시됐다. '슬램덩크'는 일본 콘텐츠이고 '마지막 승부'는 한국의 이야기다. 이는 좋은 예시가 된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수많은 학교의 농구부는 일본 학원 스포츠를 대변하는 것이다. 누구나 운동을 골라서 할 수 있고, 그 중 두각을 보이면 전국제패도 꿈꾼다. 반대로 우리나라 고교 농구팀은 수십 개에 불과하고, 각 학교 코치와 심판 선수와 학부모는 모두 하나의 '길드'로 묶인다. 물론 대학 입시를 위한 길드다. 최근에 터진 아마추어 농구 비리 사건은 그 극단적인 예다.
학원 스포츠는 '청소년의 여가활동'이라는 대명제로 돌아와야 한다. 물론 여가활동을 즐길 만큼 우리 학생들이 한가하지가 않다. 그러나 보는 스포츠에서 하는 스포츠로의 변화는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 언제까지 입시지옥에서 구직지옥으로, 구직지옥에서 생활지옥으로의 순환선에 몸을 맡길 것인가.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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