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봉우리 중 하나인 경기 안산시 상록구 수암봉(해발 398m) 아래에는 경기서남부에서 가장 오래된 안산초등학교가 둥지를 틀고 있다.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지난달 3일 개교 100주년 기념비가 교정 한편에 우뚝 섰다.
그런데 비석을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는 '잘못된 기념비를 철거하라'는 내용의 유인물 몇 장이 도착했다. 이 유인물은 지역역사 및 문화에 관심 있는 안산시민들로 구성된 안산지역사연구모임이 보낸 것이다. 모임 회원들은 "안산초등학교는 1899년 우리가 설립한 학교인데 일제에 의해 개편된 1912년을 개교 시점으로 잡는 것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안산초교의 13년 역사를 되찾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교 측도 이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며 검토작업에 나서 100년 만에 잃어버린 역사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4일 안산지역사연구모임 등에 따르면 안산초교는 대한제국 말기인 1899년 9월 안산군공립소학교란 이름으로 개교한 뒤 1906년 공립안산군보통학교로 개명됐다. 이 학교는 안산ㆍ시흥ㆍ광명ㆍ군포ㆍ의왕ㆍ과천ㆍ안양시 등이 포함된 경기서남부지역에서 가장 먼저 생긴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와 비교해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한일합병조약)는 전국 보통학교들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바꿔놓았다. 일제는 전국의 보통학교를 조선총독부 관제로 개편하며 일본인 교장들을 임명했다. 안산군보통학교에도 1912년 일본인 교장이 부임하며 다시 개교했다. 이후 현재까지 안산초교의 공식적인 개교일은 1912년 4월 1일이지만 그 이전 공립소학교가 존재한 증거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안산군공립소학교 김광식 교원 임명' 공고가 실린 광무 3년(1899년) 11월 8일자 관보 등 1899년~1910년 대한제국 관보 20여 편에는 당시의 교원 임면기록이 남아 있다. 1908년 4월 30일자 황성신문에도 '공립안산군보통학교 낙성식 민간인 모금내역'이 기록됐고, 1911년 1월 4일자 매일신보에도 학교 관련 기사가 실렸다.
안산지역사연구모임 관계자는 "올해가 개교 100주년이면 우리 손으로 만들어 운영한 13년의 역사는 무시된다"며 "안산초교 앞은 3ㆍ1운동 당시 시민 2,000여 명이 대한독립을 외친 경기도 5대 만세운동지 중 한 곳인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안산초교도 이런 주장에 공감하지만 100주년 기념비를 세운 동문회 내부적으로 "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견이 있어 아직 연혁 수정 결정은 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측은 추가 증거 확보를 위해 경기도교육청 등에 문의했지만 교육계에는 남아 있는 자료가 없는 상황이다. 이완섭 안산초교 교장은 "경기서남부 근대 교육의 시발점인 학교라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다"며 "관련 사료를 더 모은 뒤 동문회와도 충분히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ㆍ사진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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