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고 있었어. 너희들 고생시키는 거.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니까 너희들도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이렇게 내가 싫을 줄 몰랐다. 날 미워해도 할 말이 없지. 내가 헛되게 산 세월이 너무 허무해서, 그래서 너희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술 좀 마셨다."(KBS 2TV 주말극'내 딸 서영이' 중 아버지 이삼재의 대사)
'내 딸 서영이'가 대한민국 아버지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11일 방송의 '50대', '60대 이상' 남성 시청률은 각각 20.2%, 21.5%를 기록했다. 드라마 시청률을 좌우하는 30, 40대 여성 시청률(14.4%, 20%)보다 높다. 또 최종회 시청률 45%를 기록하며 국민드라마로 등극한 전작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50대 이상 남성 시청률(7%)의 3배를 넘나드는 수치다.
이처럼 아버지들을 주말 저녁 안방극장에 모은 힘은 서영이 아버지 이삼재(천호진)에서 나왔다. 건설자재 하청업체 과장으로 평범하게 살다가 IMF 때 회사 부도가 나면서 인생이 꼬인 이삼재. 삼재라는 이름처럼 돈 좀 벌라고 나서면 영락없이 사기를 당하고, 무슨 일을 해도 손님들과 얽혀 사고를 내는 쉽지 않은 인생이다. 게다가 자신을 이해해주던 아내는 병으로 죽고 딸은 아버지가 못마땅해 인연을 끊자고 한다.
사실 이 드라마는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서영이가 재벌가의 아들 강우재(이상윤)와 결혼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다. 게다가 부녀의 인연을 끊은 딸, 우재 아버지의 불륜, 아들을 사장 집에 업둥이로 들여보내는 사장 비서(조은숙) 등에 대해 막장이라는 비난도 만만찮다. 그런데도 아버지들은 가족에게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를 고개 숙인 삼재의 대사를 통해 전하는 것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
박상태(58ㆍ가명)씨는 "가족들 입에 밥 끊기지 않게 하려고 한평생 밖에서 일하다가 퇴직하고 나니 가족들과 이야기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 같은 아버지의 존재가 잘 그려졌다"고 말했다. 김문수(55ㆍ가명)씨는 "외롭다고, 나를 좀 이해해 달라고 가족들에게 터놓고 이야기 할 수도 없는 아버지들의 속내를 대신 보여줘 속이 시원하다"고도 했다.
아버지의 진심을 느낀 딸들의 호응도 시청자 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꿈자리가 사나워 아침부터 서영이네 앞에서 지키고 있다가 사위 대신 교통사고까지 당한 아버지의 모습에 박진주씨는 "이제껏 다른 드라마들이 엄마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줬는데 이 드라마는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는 글을 올렸다. 장미라씨는 "전봇대 뒤에서 몰래 서영이를 훔쳐보는 아버지의 미소를 보면서 울컥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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