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한 특별검사팀(이광범 특별검사)은 14일 김인종(67) 전 청와대 경호처장 등을 배임 혐의로 기소하면서 이들이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공모했고 국가에 금전적 손해를 끼쳤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객관적ㆍ법률적 기준은 모두 무시된 사실이 드러났다.
"시형이 명의로" 대통령 지시
특검팀 수사로 드러난 이번 배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김 전 처장은 2010년 2월 이 대통령으로부터 사저 터 및 경호시설 부지 마련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김태환(58)씨를 전문계약직으로 임용해 일을 맡겼다. 김씨는 심형보(47) 경호처 시설관리부장 등의 도움을 받아 11개월여에 걸쳐 토지 물색에 나섰다. 당시 김씨가 고른 땅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땅을 포함한 12곳 정도였다. 이들은 지난해 1월 직접 이 대통령에게 후보지를 보고했고, 내곡동 등 2곳을 집중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씨 등은 지난해 3월 감정평가기관 2곳에 의뢰해 내곡동 땅의 감정평가액을 받아보고 한 달 뒤 땅 주인 유모씨와 가격 협상에 들어가는 동시에, 이 대통령으부터 "내곡동 땅을 매입해도 좋다. 부지 명의는 시형이 명의로 하라"는 최종 결재를 받는다. 땅 주인과 협상 끝에 결정된 사저 부지 및 경호시설 부지 9필지의 땅값은 약 54억원이었다.
감정가 무시, 시형씨 이익 챙겨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김 전 처장 등이 총 9필지의 부지 중 3필지를 경호처와 시형씨가 공동 매입하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시형씨가 상대적으로 낮은 값에 땅을 사도록 하는 계약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최대한 국가예산은 많이 쓰되, 시형씨가 부담할 몫은 줄어드는 다양한 계약 방식이 논의됐다.
이들은 시형씨가 부담할 금액을 11억2,000만원으로 미리 정해놓고, 가장 입지가 좋고 가치가 높은 내곡동 20-17번지 지분을 시형씨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배분하는 수법을 썼다. 결국 같은 땅을 사면서도 시형씨는 절반의 땅값만 지불한 것이다. 감정평가액을 기준하면 20억9,205만원을 내야 할 땅이었지만 이 같은 기준은 모두 무시됐다. 결국 시형씨가 내야 할 9억7,205만원은 경호처 몫으로 전가됐다.
이 대통령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하지만 배임을 기획하고 사후 증거 은폐를 시도한 실무자들의 보고 라인의 정점에 이 대통령이 있었던 구조인데다, 대통령 일가 스스로가 배임으로 발생한 '이익의 귀속자'가 된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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