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올린 후 딱 한 달이 됐다. 집에서 깨소금 맛이 나겠다는 둥, 꿀단지를 집에 숨겨놓고 다니겠다는 둥 '신혼'에 대해 다들 이렇게 말하는데 깨소금이니 꿀단지니 하는 건 도대체 누구 이야긴지 원, 우리는 절반 정도는 사이가 좋았고 절반 정도는 죽도록 싸웠다. 너무 싸우는 데 힘을 빼서 다음날 출근이 용이하지 못할 정도였다.
처음에 이런 의문에 괴로웠다. "사랑하는데 도대체 우리는 왜 싸우는 걸까? 보통 치약 짜는 방법 같은 걸로 싸운다길래 그 정도 마음의 각오는 했었지만 치약 따위는 우리의 싸움거리에 끼지도 못했다. 이를테면, 30년을 달리 살아오던 생활의 방식이 그대로 부딪힌 것이다. 방이라도 하나 더 있다면 상대가 꼴 보기 싫은 순간 잠시 숨을 공간이라도 있었겠으나 단칸방이라 틀어박힐 만한 곳이 화장실이나 보일러실, 옷장이니 서로의 마이너스 에너지를 그대로 받아내야 했다. 간혹 남편은 집 앞에 잠깐 나가 숨을 돌리곤 했지만 이제 날씨가 매워진지라 가엾게도 그 작은 탈출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나는 워낙 제멋대로의 삶을 살았고, 스무 살이 넘고 나서는 혼자 산 날이 길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삶이었다. 내 맘대로 시간을 보내고 하고 싶은 만큼 자신을 망가뜨렸다. 인상은 얌전하지만 강단이 센 남편은 내가 제발 나랑 결혼해줘! 라고 애걸복걸하자 술과 오토바이를 끊을 것을 요구했다. 술은 나도 끊고 싶지만 10년이나 타던(대형 면허까지 땄는데!) 오토바이까지 끊으라니, 처음에는 머리가 핑 돌았지만 결국 술이나 오토바이보다는 이 남자를 더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다짜고짜 그러겠다 약속을 하긴 했다. 그러나 술이나 오토바이가 없는 내 인생을 도대체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술과 오토바이와 책, 이 세 가지가 나를 지탱해 주었는데 뭔가 스스로가 텅 빈 느낌이었다. 물론 우리 어머니는 그토록 지긋지긋해하던 두 가지를 새 사위가 단칼에 쳐내니 기뻐 손뼉을 치셨지만. 이윽고 책도 문제가 되었다. 벌써 몇 년째 지긋지긋하게 불면증에 시달려 처방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잠들 수가 없는데, 수면제를 먹은 후 해롱해롱하게 만화든 책이든 뭔가 보면서 잠이 드는 게 몇 년 동안 발견한 가장 순조롭게 잠드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습관이 남편을 외롭게 만든 것이었다. 원래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던 그를 달래고 구슬려서 겨우 하긴 했지만 그가 원하는 결혼생활은 적어도 해롱대며 책이나 보다 혼자 자 버리는 뒤꼭지를 바라보다 쓸쓸히 홀로 잠을 청하는 게 아니라, 둘이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 스르르 잠드는 그런 거였다. 누가 봐도 남편 말이 옳다.
하지만 몸에 붙은 습관이 문제였다. 어른들과 친지들을 모시고 식을 올린 다음부터 어쩐지 다툼이 잦아졌다. 이제는 '진짜' 남편과 아내라는 생각 때문일까. 우리는 제멋대로 살아온 면에서 똑같다. 다혈질에 성질도 급하다. 단, 나보다 남편이 조금 더 뜨겁다. 게다가 그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 공격력이 뛰어나다. 나는 느리고 눈치가 없어 회사에서도 여러 사람 괴롭히고 있고, 역시 이 회사에서 남편을 만나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 조금 넘어 결혼해 버렸다. 너무 급하게 결혼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오늘 아침에도 내가 뭘 잘못해서 남편이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사랑하는데 왜 맨날 다투나, 서러운 생각이 들다가 사랑하니까 다투는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흔히 듣던 이야기인데 정작 내 일이 되니 하나부터 배우느라 고생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서로 긍휼히 여김을, 부처님이 말하는 자비를 서로 실천하는 것이 세상을 향한 사랑의 시작이구나, 하고 아는 줄 알았던 걸 매일 깨닫는 것 때문에 어른들이 결혼해야 어른 된다고 하는 것일까. 이따 남편에게 살며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봐야겠다. 아무래도 내칠 것 같지만, 나뿐 아니라 상대를 긍휼히 여기는 것도 사랑이다 싶다. 신혼의 꿀맛은 잘 모르겠고 인생의 쓴맛은 조금 더 알게 되어 달달한 순간이 올 때 더욱 달콤하다. 비록 지금은 용서하라고 열렬히 매달려야 할 때지만.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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