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한국화의 한계를 뛰어넘은 박생광 선생(1904~1985)도 80대까지 붓을 놓지 않으며 완숙기에 이르셨지요.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화업을 하려고 합니다."
내년 2월 정년을 앞둔 한국화가 한진만(64) 홍익대 교수가 지난 45년의 화업을 정리하는 개인전 '천산(天山)'을 15~30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연다. 제자 250여 명은 스승의 정년을 기념해 전시에 맞춰 화집도 펴냈다.
직접 산에 올라 스케치하는 진경산수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한 교수의 산수화는 마치 검객이 칼을 휘두르는 듯한 절도있는 필법으로 눈길을 끈다. 중국 당나라 궁정화가 오도현이 창안한 검필법으로, 기운생동하는 산과 주변의 여백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줄곧 구사해오고 있다. 실제로 그는 대학 시절부터 검도를 익혀온 유단자로, 운필에도 검객의 기운이 서려 있다.
'천산'전에는 한 교수가 2008년 가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혼자 올라 느낀 감흥을 담아낸 그림 30여 점이 전시된다. 그 풍광은 에베레스트라기보다 금강산, 마이산 등의 한국 영산(靈山)과 닮았다.
"에베레스트에 가보니 산이 호흡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신이 산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자체가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막상 스케치를 해보니 바위가 많은 우리나라 산에 비해 특징이 없더군요. 하지만 부분을 보니 금강산과 마이산이 보였지요."
하늘에서 보면 지구의 산은 모두 하나로 보일 터. 한 교수는 자신이 지금껏 화폭과 마음에 담아온 영산을 혼용해 그려냈다. 그는 이를 '지구 산수화'라 통칭한다.
13년 전, 자연이 좋아 마련한 강원도 춘천 북산면 작업실에서 방학 때마다 화업에 몰두해온 그는 "자유인이 되는 내년부터는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매년 한 차례 전시가 끝나면 여행을 다니며 영감을 얻지요. 내년에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사막인 무스탕 같은 곳을 다니면서 지금과는 색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학교를 떠나는 내년 2월에는 홍익대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초기 작부터 근작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회고전을 열 계획이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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