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춤춘다." 1815년 나폴레옹 축출 후 유럽을 분할하기 위한 국제 회의를 열어놓고 허구한 날 파티로만 지새던 각국 외교관들을 빈정대던 한 장군의 푸념이다. EMK뮤지컬컴퍼니의 '황태자 루돌프'는 그보다 40년 뒤 유럽의 첨예한 외교적 암투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연회장을 한껏 들뜨게 했던 왈츠뿐 아니라 이 시대 대중 음악까지 적극 동원되니, 춤추는 국제 외교 현장이 더욱 선명히 부각된다.
무대는 정략적으로 결혼한 루돌프가 진실한 사랑을 찾다 죽음으로써 천하에 자기 사랑을 증명하기까지를 그린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엘리자벳' 등 유럽사를 주제로 한 뮤지컬을 쭉 선보여 온 EMK뮤지컬컴퍼니의 축적된 노하우 덕에 무대는 간결과 화려함을 드나들며 동반 자살의 필연성을 그려 보인다.
노골적 키스, 포옹 등 선정적 장면이 종종 등장하지만 온갖 쾌락을 거부하고 자살을 택한 루돌프의 내면을 수긍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때로 패설과 환락이 과잉의 징후를 보이기도 하지만 역사극에 정통한 원작자 잭 머피의 의도적 장치임이 드러난다. 덕택에 객석에게 돌아오는 것은 쾌락의 현장을 고스란히 들여다 보는 재미다.
나아가 밀실과 광장이 극적으로 공존한다는 점은 무대의 가장 큰 강점이다. 극장 뒤에서 객석을 통해 무대에 오르는 성난 군중, 그들을 선동하는 정치적 언어 등을 통해 뮤지컬은 당시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려 한다. 긴 공연 일정을 감안해 안재욱 임태경 박은태(루돌프), 옥주현 최유하 김보경(마리 베체라) 등 트리플 캐스팅으로 진행되는 무대는 일부 마니아들에게는 동반 자살로 마감하는 연인의 내면을 비교하는 관람의 즐거움까지 제공할 터이다.
반라의 무희, 노골적 애정 행각 등 감각 과잉의 장면들에도 불구, 무대는 큰 시사점을 남긴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역사라는 큰 틀을 망각하지 않는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당대 정세를 두고 설전에 가까운 담론을 펼치는 왕과 왕자의 모습은 이 무대가 갖는 설득력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암시한다. 시내 풍경에서 스케이트장으로의 신속한 전환, 사실적 야경 등 자체 무대 메커니즘을 확보해 가고 있는 이 극장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다.
2013년 1월 27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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