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관등날 저녁, 구경할 때에 김상공(金相公)이 나를 이끌고 삼계동(三溪洞) 산정(山亭)에 들어갔습니다. 삼계동은 창의문 밖에 있었지요. 시내와 산은 깊숙하고 숲은 울창했으며, 정자와 대(臺)의 경치는 흡사 산성의 별장이었습니다.(허련 소치실록ㆍ小癡實錄)” 조선 말기 선비화가 소치 허련은 1866년 4월 초파일, 세도가 김흥근의 별서(別墅)에 초대 받고는 주변 경치에 넋을 잃었다. 그 별서가 흥선대원군이 탐을 내 자신의 소유로 삼은 지금의 석파정(石坡亭)이고, 동네는 부암동이다.
▦커다란 부침바위(付岩)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서울 종로구 부암동은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 자락에 둘러싸여 조선시대부터 경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안평대군의 무계정사터, 반계 윤웅렬 별서, 세검정, 창의문(자하문), 탕춘대터 등 왕족과 사대부의 별장과 정자가 곳곳에 있다. 소설가 빙허 현진건의 집터와 김환기 화백의 환기미술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그 중에 백미는 명승 36호로 지정된 백석동천(白石洞天).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의 별장이 이 곳에 있었다고 해서 백사실(白沙室) 계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백석은 북악산을, 동천은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니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란 뜻쯤 되겠다. 울창한 소나무 숲 속 실핏줄 같은 계곡엔 북악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졸졸거린다. 맑은 물에는 사대문 안에서 유일하게 도롱뇽이 서식한다.
▦백석동천 한가운데엔 둥그런 연못터와 육각형 정자터, 사랑채터와 안채터 등이 남아있다. 주변 큰 바위에 백석동천과 월암(月巖)이란 각자(刻字)가 있어 당시 선비들의 풍류를 전해준다. 백석동천 일대를 추사 김정희가 소유했었다는 자료가 발견됐다고 한다. 추사의 완당전집에 “선인 살던 백석정을 예전에 사들였다”라는 대목과 주석에서 “나의 북서(北墅ㆍ북쪽 별장)를 말한다. 백석정 옛터가 있다”고 한 대목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추가 조사 결과가 기대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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