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선의(善意)도 얼마든지 나쁜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 정치나 정책도 그렇다. 따라서 정작 중요한 건 좋은 의도가 아니라, 실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에 대한 판단일지 모른다.
지난 주말 덴마크가 세계 최초로 도입했던 비만세(fat tax)를 시행 1년 만에 폐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도입 때만 해도 세계적인 호응을 얻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도입론을 촉발했던 바로 그 세제다. 도입 의도는 훌륭했다. 덴마크는 인구의 47%가 과체중이고 13%가 비만이다. 당국은 고지방식품에 비만세를 부과하면 세수를 늘릴 뿐 아니라, 고지방식품 소비를 줄여 국민건강에도 이로운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낙농제품, 육류와 가공식품 가운데 포화지방을 2.3% 이상 함유한 식품에 대해 포화지방 1㎏ 당 16덴마크크로네(약 3,400원)의 세금을 물렸다.
하지만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버터 가격 14.1%, 올리브유 가격 7.1%를 비롯해 우유 고기 조리식품 가격이 줄줄이 오른 건 어느 정도 예상됐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식습관을 바꾸기 어려웠던 국민들이 고지방식품 소비를 줄이는 대신 보다 저렴한 식품을 구입하기 위해 대거 독일 국경을 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덴마크 식품업체와 가게는 줄줄이 문을 닫아야 했고 해당 부문에서 실업이 발생해 사회문제가 됐다. 물가만 올렸다는 원성도 샀다. 결국 정부로서는 깨끗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도 ‘착한 정치’와 ‘선의의 공약’이 여야를 막론하고 젖과 꿀처럼 곳곳에 흘러 넘치고 있다. 그러나 의도만큼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아무래도 석연찮은 얘기가 너무 많다.
0~2세 무상보육은 이미 나쁜 결과가 일부 확인된 정책이다. 여야 정치권이 지난 총선을 앞두고 무슨 ‘보편적 복지’의 부표(浮標)라도 된다는 듯이 밀어붙였고, 정부도 어정쩡하게 따라갔다. 그러자 집에서 아이 잘 키우던 엄마들까지 ‘안 맡기면 손해’라며 너도나도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려고 나서면서 일시에 7만여 명의 유아가 보육원으로 향하고, 지자체 예산도 금방 바닥나는 사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급기야 정부는 소득 상위 30% 가구를 보육비 전액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수정안을 냈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까지 포함해 모든 대선 후보들은 절대 수정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늘도 전국의 서민 맞벌이 가구 아동 70여 만 명이 방과 후에 보호자 없는 집에서 범죄와 탈선, 사고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무방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편적 복지의 알리바이를 만들겠다는 대선 주자들의 왜곡된 선의가 방과 후 돌봄교실 확대에 시급하게 쓰여야 할 막대한 예산을 엄마 품에서 아기들을 공연히 떼어놓는 어처구니 없는 일에 쓰이게 한 셈이다.
대선 주자들의 ‘위험한 선의’는 지금도 아무런 제어장치 없이 대선 공약 곳곳에 작동하고 있다. 외국어고나 자사고를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신(新)고교 평준화 정책’도 그렇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고교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특목고를 제외한 지난해 서울대 진학률에서 강남ㆍ서초구(약 160명)가 서울 평균(약 50명)의 세 배에 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평준화 체제에서 오히려 빈부, 도농(都農)간의 학업성취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헤아리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대선 주자들은 잘 가다듬어지지 않은 이런 식의 선의에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중구난방의 공약을 버무려 그것을 ‘착한 정치’로 포장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기초노령연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든지,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중단이나 목돈 안 드는 전세 대책 등이 그 ‘착한 정치’의 얼굴들이다. 무지하거나 교활한, 수많은 정치적 선의의 허상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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