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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도 모르던 우리 할매들이 詩까지 썼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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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도 모르던 우리 할매들이 詩까지 썼다우"

입력
2012.11.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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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보고 시를 쓰라고? 때 맞춰 서방님 약 챙겨 주고 밥도 차려 줘야지, 논에 물도 대야하고 깻구멍도 뚫어야 하는디. 흙 얹고 김매는 게 차라리 낫지."(전경임 할머니ㆍ74)

학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충북 옥천군 안내면의 '까막눈' 할머니들이 시집을 냈다. 주민자치센터가 운영하는 '행복한 학교'에서 뒤늦게 한글 공부에 뛰어들어 소중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시집 에 엄선된 127편의 시에는 글을 깨우친 할머니 23명의 즐거움과 회한이 소박한 언어로 오롯이 그려져 있다.

이 학교 교장 민병용(56)씨는 1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바쁜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10㎞가 넘는 거리를 통학하며 태운 향학열의 결과물"이라며 "8~10일 있었던 출판 기념식에서는 웃음 소리가 많았지만 흐느끼는 소리도 컸다"고 전했다. 감동적인 시가 그 만큼 많았다는 거다.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잘 승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최종예(75) 할머니의 '사랑하는 남편에게'가 대표적이다.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사고로 당신을 먼저 보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밤이 되면 아이들을 재우고 살아 생전 당신 생각으로 말없이 울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혼자 자식들과 살 생각하니 기가 막히더군요/ 밥 달라는 자식 굶길 수 없어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보! 나 애들 다 결혼시켰어요. 한번만 말해줘요 / 고생했다고."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할머니들의 한글 강의는 이 마을 '새댁' 최영옥(57)씨가 맡았다. "평균 79세의 '시어머니'를 상대로 하는 수업을 상상해 보세요. 마음대로 안 된다고 체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화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웃음만은 끊기지 않았어요."그의 표현대로 '곡절 많은' 수업이었지만 모내기, 수확의 계절에 잠깐씩 하는 농번기 방학을 제외하곤 수업은 계속 이어졌다. 90%에 달하는 출석률이 할머니들의 늦깎이 공부 열정을 말해준다.

한글 강의 후 이어진 시 수업을 맡은 황예순(45)씨는 "어휘력을 기준으로 하면 할머니들의 국어 실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라며 "적은 단어로 큰 감동을 주는 게 이 시집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대전에서 국어, 논술을 가르치다 3년 전부터 고향 어른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시를 쓰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기 보다는 시를 통한 마음의 치유에 중점을 뒀지요. 시를 한편 한편 써가면서 할머니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어요."

이 시집에서 가장 많은 시는 염금옥(83) 할머니 몫이었다. 남편을 여읜 뒤의 삶을 압축한'보내고'등 22편이나 썼다. 염 할머니는 "까막눈 면한 것도 기쁜데, 내가 쓴 시를 사람들이 봐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 밭에서 하는 호미질이 절로 될 정도"라며 "남편 곁으로 가는 날까지 시를 쓰겠다"고 했다.

"그 사람 있을 때 좋은지 궂은지 모르고 보냈으나/ 가고 나니 할 일이 너무 많아/ 날 밝아 눈 뜨는 게 무섭네/ 모르는 것 너무 많아 막막하고 답답하고/ 벽에 못 박으려다 먼저 내 가슴에 못이 박히네/ 야야 느덜 있을 때 잘혀." '보내고'라는 제목의 염 할머니 시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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