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2일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 중인 이광범 특별검사팀의 청와대 경호처 압수수색을 거부한 데 이어 수사기간 연장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특검 수사에 비협조적인 청와대의 태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청와대의 태도는 1970년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특검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무리하게 증거를 감추려다 결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강제로 증거를 제출해야 했던 닉슨 대통령의 사례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두 사건은 몇 가지 측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닉슨 대통령은 당시 특검이 요구했던 '진상을 규명할 결정적 증거'(smoking gun)를 내놓지 않고 감췄다. 1973년 7월 13일 미국 상원의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에 출석했던 백악관 관계자가 백악관이 대통령 집무실의 모든 대화를 자동녹음하고 있다고 폭로함에 따라, 이 녹음테이프가 의혹 규명의 결정적 단서로 부각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은 닉슨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사 도청을 지시했는지 여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는 콕스 특검과 상원의 요구를 완전히 묵살하고 증거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진상을 규명할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은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이광범 특검팀은 12일 청와대 경호처가 임의 제출한 자료에 당초 요구했던 사저 부지 매입계약 관련 자료나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34)씨가 작성한 차용증 원본 파일 등 중요 증거들이 포함돼 있지 않자,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을 근거로 압수수색을 실시하려고 했지만 청와대가 그 자리에서 거절해 무위에 그쳤다.
비슷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청와대는 오는 14일로 1차 수사기간이 끝나는 특검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도 거부하고 사실상 특검 해임을 통보하며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슷한 전개 과정을 밟고 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녹음테이프 원본 제출을 요구하는 콕스 특검을 해임하는 방식으로 사태에 대응했고, 이는 결국 탄핵 소추라는 역풍으로 돌아왔다. 당시 법무장관과 법무차관이 특검을 해임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고 잇달아 자진 사퇴했지만 닉슨 대통령은 끝내 법무차관보를 시켜 콕스 특검을 해임해 버렸다. 이른바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회자되는 사건이다.
특검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내건 명분도 흡사하다. 청와대는 이날 특검팀의 경호처 압수수색을 거부하면서 "공무원이 소지한 물건은 해당 관공서의 승낙 없이 압수할 수 없으며, 경호처는 국가기밀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허가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백악관은 '행정부의 특권과 국가 안보'를 이유로 녹음테이프 제출을 거부했다.
두 사건이 주는 교훈도 닮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확대된 이유는 닉슨 대통령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끝내 진실을 감추려고 했기 때문이다. 내곡동 사건도 이 대통령이 직접 사과까지 했지만, 검찰이 대통령 아들인 시형씨를 소환하지 않고 감싸기로 일관하는 등 사건 관련자를 전원 무혐의 처분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고 결국 특검에 의한 재수사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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