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쏟아낸 경제민주화 약속이 벌써부터 사그라질 조짐이다. 유력 대선 주자가 당에서 공식 발표한 약속을 뒤집는가 하면, 여야 모두 지지층에게만 혜택을 돌리는 표리부동한 법안을 쏟아내고 있어 경제민주화가 구두선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12일 기획재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정치권의 이율배반적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유력 대선 후보 3인 모두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비과세 감면을 주장하면서도, 10월 이후 정치권이 내놓은 조세 관련 입법 17건 중 15건이 특정 계층의 세금을 깎아주는 내용이다.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 등은 최근 부유층의 투자수단으로 인기 있는 고가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 조치를 4년 연장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민주통합당 우원식 의원 등은 택시 연료에 부과되는 모든 간접세를 면제하고 유류세 감면조치도 2015년까지 연장해 3년간 1조8,389억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또 연말 종료되는 농ㆍ수ㆍ축협 예탁금 및 출자금에 대한 이자ㆍ배당소득 비과세 혜택을 연장하고, 경찰ㆍ군인ㆍ교원 등의 공제회 저축을 세금우대종합저축에 포함시켜 공공부문 종사자의 이자소득세 부담을 줄여주는 법안도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통합민주당 이해찬 의원 등은 지역 기반인 세종시 이전 기업ㆍ기관에 세제 혜택을 주는 법안을 내놓았고,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 등은 새만금지역 개발사업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재벌 개혁'에서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 '기존 순환출자 유지'로 급속히 유턴해 경제민주화의 정체성을 의심케 한다는 지적이다. 박 후보는 8일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는데, 이는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제한하겠다는 당론과 배치된다.
박 후보는 11일 "박근혜 후보가 재벌 논리에 동화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만났으나, ▦대기업집단법 제정 ▦대기업 총수 주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 참여재판 의무화 ▦재벌총수 등 임원진 급여 공개 등 주요 경제민주화 공약을 모두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이 진행되면서, '순환출자 전면 금지 - 기존출자 3년 내 해소'(문재인 후보)와 '신규출자 금지'(안철수 후보) 중 어떤 방안이 채택될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재계와 보수층을 중심으로 경제위기론이 부각되면서 재벌 개혁과 복지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경제민주화에 적극적이었던 새누리당 박 후보는 최근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이 모두 중요하다"며 이른바 '투 트랙톤'을 내세우면서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새누리당 내부에선 법인세 최고세율 현행 유지, 집권과 동시에 10조1,000억원 규모의 경기부양책 시행,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의 투자여건 개선 등 과거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를 세우자)'를 연상케 하는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건국대 경제학과 김진영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 상속 등 재벌 폐해를 막으려면 경제민주화가 필요한데도, 관련 논의는 피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정치권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실천 의지가 약해지면서 표를 얻기 위한 말만 무성한 채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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