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버킷 리스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버킷 리스트

입력
2012.11.12 12:03
0 0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말한다. 2007년에'버킷 리스트'라는 영화가 나온 이후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말이 크게 번진 것은 그만큼 공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자살을 하거나 사형당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Bucket)를 차버리는 행위에서 비롯된 말이니 별로 기분 좋은 건 아니다. 우리말로 뭐라고 바꿔 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 계간 가 겨울호를 내면서 '시인들의 버킷 리스트'라는 특집을 마련했다. 그 동안 '시인들의 자화상' '시인의 적' '내 시에 담긴 음식' 등 재미있는 기획을 많이 해온 시 전문지다. 이번엔 겨울호여서 그런지 버킷 리스트를 불러 모았는데, 시인 11명이 세 가지씩 소개한 목록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비슷한 내용이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신달자 시인이 말한 대로 '백 년이 가도 천 년이 가도 그 시인의 그 작품으로 남는 시 한 편을 꼭 쓰고 싶다'는 것이 아닐는지.

■ 그런 소망을 이루려고 讀萬卷書 行萬里路(독만권서 행만리로)의 독서와 여행을 하고, 추사나 다산과 같은 귀양살이, 고립과 격절의 무인도 살이를 하거나 금식과 침묵의 고행을 해볼 것을 그들은 꿈꾸고 있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여러 사람의 '꼭 해야 할 일'에 말을 하지 않는 게 들어 있는 점이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일수록 침묵과 혼자만의 사색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무작정 서울을 떠나 아무데나 떠돌다가 가톨릭 '피정의 집'에 머무는 꿈을 꾸고 있었다.

■ 그런가 하면 38년간 교사로 일했고, 어쩌다 덜컥 시인이 됐다는 김용택은 다르다. 그는 어느 잡지에 실은 '버킷 리스트' 글에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다. 아직 나만큼 잘 산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는 바라는 바도 되고 싶은 것도 없다. 살다 보면 내게 새로 오는 그것이 내 것이 된다."라고 말했다. 남다른 버킷 리스트를 제시하는 사람들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양동이를 발로 걷어찰 필요가 없는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마음이 더 초조해지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