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상황을 함부로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기유학생으로 호주 멜버른에 거주하다 지난 9월 현지 10대 청소년들에게 무차별 폭행과 새끼손가락이 잘리는 피해를 입은 장모(33)씨의 주장은 당시 사건에 인종범죄적 요소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환기한다.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 9월27일 오후7시 무렵이다. 멜버른 기술학교에 다니는 장씨는 친구 한 명과 함께 학교 기숙사 근처 공원에 앉아 있었다. 현지 청소년 10여명이 다가와 담배와 돈을 요구했고, 없다며 자리를 뜨려 하자 갑자기 뒤에서 달려들어 둔기와 흉기까지 휘두르며 폭행을 시작했다. 이들은 '망할 놈의 중국인(fucking chinese)'이라거나, '○○○ asian' 같은 인종차별적 욕설도 퍼부었다. 폭행은 장씨가 기절할 때가지 이어졌고, 장씨의 새끼손가락까지 흉기로 절단했다.
뒤늦게 알려진 이 일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건 호주 경찰의 사건 처리다. 우리 공관에 따르면 현지 경찰은 폭행 용의자 중 1명만 구속기소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리 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했다. 멜버른이 속한 빅토리아주에선 인종차별을 형법으로 규제하고 있었지만 관련 정황은 수사하지 않고, 단순폭행 혐의만 적용했다고 한다.
더욱 실망스러운 건 현지 경찰이 사건 처리의 적절성을 따지려는 멜버른 주재 우리 영사관의 요구조차 거부했다는 것이다. 영사관에 따르면 사건 관할 경찰은 "수사가 끝나고 기소된 사안이라 더 할 말이 없다"는 식이고, 빅토리아주 경찰국장이나 정부 연락관은 아예 영사 면담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문명국가라면 외국인 대상 범죄나 인종혐오 사안에 대해선 특히 단호하게 처리하는 게 옳다. 더욱이 호주는 과거의 '백호주의'를 폐기하고 아시아국가임을 자임하고 있으며, 연간 약 20만명의 우리 국민이 관광, 워킹홀리데이, 유학 등을 위해 방문하는 가까운 문화교류국이다. 호주 당국은 이번 일에 대해 우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놔야 마땅하다. 현지 공관도 자리를 걸고 호주 당국의 공식 입장을 받아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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