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균아, 엄마 목소리 들려?”, “응, 물 밖에 있을 때처럼 잘 들려!”
어머니 김행자(41)씨는 아들 김민균(11ㆍ인천 대화초등4)군의 대답을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민균이가 여덟 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한 뒤 물 속에 있는 민균이와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선천성 고도난청 장애가 있는 민균이는 생후 18개월 때부터 인공와우(인공 달팽이관)를 착용했다. 하지만 방수가 안 돼 목욕을 하거나 수영을 할 때면 외부 어음처리기(음향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장치)를 늘 떼야 했다. 그런 탓에 민균이가 수영 연습을 할 때면 그저 지켜볼 도리 밖에 없었다. 물 속에 있는 2~3시간 동안 민균이는 세상의 모든 소리와 단절된 채 오롯이 홀로 물살과 맞서왔다.
그러나 10일 오후 서울 미아동 화계초등학교 스포츠센터에서 만난 민균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포낙보청기와 함께 청각기기 전문그룹 소노바 소속 AB코리아가 세계 최초로 출시한 완전방수형 인공와우 ‘넵튠’이 세상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됐다. 신동일 AB코리아 대표는 “고도 난청인들이 기존 인공와우 착용으로는 불가능했던 목욕이나 수영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김씨가 아들이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생후 11개월쯤. 두세 번 불러야 반응하는 아이가 이상해 찾아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귀에 갖다 대고 총을 쏴도 모를 정도”의 장애가 있다는 진단이었다. 1,000명 가운데 1명 꼴로 원인 불명의 선천성 고도난청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6개월 후 결국 인공 달팽이관 삽입 수술을 받았지만, 어머니로서 아들에게 닥칠 고난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했다.
언어치료사가 호흡이 유독 짧다며 민균이에게 수영을 가르치면 어떻겠냐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이었다. 인천 지역 수영장을 이 잡듯 뒤졌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혹시 모를 사고 위험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인천 서부 청소년수련관에서 장애우를 모집한다는 소식은 한줄기 빛이었다. 청각 장애 탓에 균형감각도 부족해 1년 동안은 발차기 훈련만 했다. 강사는 소리를 못 듣는 민균이에게 수영 동작에 번호를 매겨 손짓으로 가르쳤다.
남들보다 불편하긴 했지만 재능은 남달랐다. 늘 옆 선수들이 출발할 때 따라 출발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을 거뜬히 극복하고 2학년 때 첫 출전한 장애인 학생 전국체전에서 자유형 3위를 했다. 수영을 시작한지 3년 여만인 올해에는 같은 대회에서 금메달 1개ㆍ은메달 2개를 목에 걸었고, 이제는 다른 초등학교 수영부에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을 정도다.
이날 25㎙ 풀을 완주한 민균이는 “신기하다”며 연방 웃음을 터트렸다. 김씨가 “그만하고 나와도 돼”라고 했지만, 이내 또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마이클 펠프스 같은 선수는 아니어도, 지금처럼 웃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어머니의 작은 소망이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