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18차 당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개막일인 8일 새벽부터 서둘렀다.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톈안먼(天安門) 광장 옆 인민대회당으로 향했는데 시내 중심부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공안 차량과 무장경찰이 눈에 띄었다. 거리의 차도와 인도 사이에는 철제 울타리와 줄을 쳐져 자동차나 택시가 아예 정차할 수 없었다. 잠시 설 수 있는 곳은 버스정류장과 지하철 출구뿐이었는데 그곳에도 어김없이 공안들이 서있었다. 톈안먼 앞에서 대회장인 인민대회당 쪽으로 가는 길은 아예 봉쇄돼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 대회장 주변의 경비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시짱(西藏ㆍ티베트) 자치구와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의 독립을 요구하는 분신과 시위가 끊이지 않는 중국이니 당의 최고 지도부가 모두 집결하는 행사에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 이해해야 했다. 사실 중국은 테러의 우려 때문에 평상시에도 지하철을 타는 승객의 가방과 짐을 검사한다. 이날 톈안먼 인근 지하철역에서 내려 인민대회당까지 1㎞ 가까이를 걸어가야 했다.
내ㆍ외신 기자들은 오전 7시30분부터 인민대회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던 만큼 가장 먼저 도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민대회당 앞엔 전세계 기자들이 200m 가까이 줄을 서있었다. 10년만의 최대 정치 행사라는 당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사전 신청을 한 기자가 1,700여명. 기자들은 한달 전 인터넷 등록을 한 뒤 다시 팩스로 회사 직인이 찍힌 신청서를 보내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만 했다. 승인이 난 후엔 인민대회당과 지하철로 여섯 정거장이나 떨어진 미디어센터에서 기자증을 수령했다. 국제적 행사에서는 통상 내ㆍ외신 기자의 등록이 이메일을 통해 진행되고 미디어센터는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마련된다.
이날 당 대회 개막 시각은 오전 9시였다. 그럼에도 기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떤 것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당 대회 보고 연설문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서다. 일부 국제행사에선 연설문이 미리 이메일을 통해 배포된다. 언론사의 요구도 있지만 주최 측 역시 정확한 보도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중국은 현장 배포만을 고집한다. 게다가 인민대회당 안엔 '연설문은 개막식 후 나온다'는 안내문만 하나 붙어 있었다.
연설문은 당 대회가 개막한 뒤에도 볼 수 없었다. 후 주석의 보고가 시작됐으니 자료를 달라는 기자들의 아우성에도 주최 측은 답이 없었다. 꼼짝없이 후 주석의 연설 내용을 하나하나 받아 적어야 했다. 후 주석의 연설은 장장 100분간 이어졌다. 연설문은 보고가 끝난 뒤 배포됐다. 전세계 기자들이 후 주석의 연설문을 받는데 3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후 주석의 18차 당 대회 보고는 5년 전 17차 당 대회 보고와 거의 동일했다. 주제는 물론이고 인사말에 이어 글의 전개 순서와 구성, 심지어 접속사와 어미까지 다르지 않았다. 연설문 중 90% 이상이 이전 보고와 같다고 단언할 수 있다. 홍콩의 언론과 역사학자, 전직 신화통신 기자마저 새 내용이 없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경제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보는 중국은 여전히 후진국이란 점을 확인할 때가 많다. 중국이 날마다 변한다고 하지만 중국만큼 변하지 않는 나라도 없다. 5년 전, 10년 전 당 대회 보고를 단어 하나 고치지 못한 채 그대로 사용하는 아니 그렇게 밖에 할 수 밖에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임되고 중국에서도 시진핑(習近平) 시대가 열리며 양대 강대국(G2)의 충돌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그러나 빈곤층만 1억명이 넘는 나라를 미국과 같은 급으로 대우해 G2란 말을 붙이는 게 합당한지 의아해질 때도 많다. 시진핑의 딸도 미국으로 유학할 정도로 미중의 차는 엄존한다. 중국은 아직 멀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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