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챔피언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2012 아시아시리즈 직전 "요미우리 자이언츠(일본)와 결승에서 붙을 것이다. 재밌는 게임이 될 것"이라던 류중일 삼성 감독이 고개를 떨궜다.
삼성이 아시아시리즈 예선 1차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당연히 요미우리와 붙는 일은 없다. 삼성은 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대회 A조 대만 챔피언 라미고 몽키즈와의 1차전에서 3안타를 터뜨리는 데 그친 타선의 침묵 속에 0-3으로 완봉패했다. 선발 라인업엔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9명의 야수들이 모두 포함됐지만 시종일관 무기력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로써 삼성은 10일 오후 6시에 열리는 중국의 차이나 스타즈와의 예선 2차전 결과와 상관없이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2승을 올린 라미고는 11일 오후 2시 B조 1위와 우승을 놓고 격돌한다.
미흡한 전력 분석과 선수들의 집중력 부재가 맞물린 최악의 결과였다. 상대 선발 마이클 조나단 로리 주니어는 미국 독립리그 출신으로 올 시즌 대만리그 8경기에 나가 6승1패, 2.50의 평균자책점을 올린 에이스다. 대만 챔피언시리즈에서도 2경기에 출전해 2승 1.9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경계 대상 1호였다.
그러나 삼성 타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상대 투수 공에 전혀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최고 시속 144㎞를 기록한 직구, 141㎞까지 나온 투심 패스트볼, 주무기로 던진 포크볼(체인지업) 등 속수무책으로 헛방망이를 휘두르며 10개의 삼진을 먹었다. 충분한 비디오 분석을 했는지 의심 가는 대목이다. 로리 같은 유형의 투수는 윤희상(SK) 이용찬(두산) 등 국내에도 많다.
삼성은 4번 최형우(4회), 5번 박한이(7회), 6번 박석민(2회)이 각각 1개의 안타를 때렸을 뿐 찬스 자체가 없었다. 3개의 안타도 모두 2아웃 이후에 나왔다. 전날 공식 훈련에서 홈런을 펑펑 때리던 타자들은 유난히 무거운 몸 상태를 보이며 상대 선발에 완봉승을 안겨줬다.
결정적인 실책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삼성은 0-0으로 맞서던 4회 선발 배영수가 선두 타자 6번 린홍위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볼카운트 1-1에서 던진 139㎞의 투심 패스트볼은 몸쪽 낮은 곳으로 비교적 제구가 잘 됐지만 타자가 잘 받아쳤다.
하지만 7회엔 어설픈 수비가 나오며 사실상 승부가 갈렸다. 1루수 이승엽과 구원 투수 심창민의 호흡이 맞지 않아 주자를 한 베이스씩 더 진루하게 만드는 최악의 플레이였다.
라미고의 9번 후앙하오란은 7회 무사 1루에서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번트를 하는 척 한 뒤 강공 전환)를 하며 1루수 쪽으로 타구를 날렸다. 그런데 재빠르게 포구한 이승엽이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는 심창민에게 토스하는 순간, 공은 뒤로 빠졌다. 1사 2루여야 할 상황은 순식간에 무사 2ㆍ3루. 삼성은 왼손 권혁을 급하게 투입했지만 1번 잔즈야오에게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맞았다.
한국 챔피언의 체면이 구겨진 반면 일본 챔피언은 예선 1차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요미우리는 이날 열린 퍼스 히트(호주)와의 B조 예선전에서 7회 터진 대타 아베 신노스케의 결승타에 힘입어 7-1로 역전승했다. 요미우리는 10일 낮 12시 롯데와 결승 티켓을 놓고 격돌한다. 시드니 블루삭스 소속으로 퍼스에 임대돼 2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구대성(43)은 1-4로 승부가 기운 8회 등판, 아웃카운트 1개만 잡은 채 3점(1자책점)을 주고 강판해 아쉬움을 남겼다.
부산=함태수기자 hts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