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남성 화장품과 패션시장. 그 배경에는 외모 가꾸기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른바 '그루밍족'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왜, 어떤 계기로 꾸미기에 푹 빠져 들었을까. 주위에서 "외모에 관심이 많다", "잘 꾸민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오연우(34·이노션 마케팅팀 차장), 윤두석(27·현대홈쇼핑 마케팅팀 입사 2년차), 박슬기(27·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3학년)씨. 이들 3인으로부터 그들이 꾸미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6일 본보 편집국에서 만난 이들은 "평소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자세하게 꾸미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며 1시간 30분간 유쾌한 수다를 풀어 놓았다.
-평소 피부나 외모 관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오연우= 남성 전문 화장품브랜드를 정해 모든 라인을 갖춰 쓴다. 나이가 들면서 스킨, 로션, 아이크림 등 기능이 세분화된 제품을 선호한다. 화장품은 집, 회사, 차, 가방에 두고 다니는데 필요한 제품을 제때 챙겨 바르기 위해서다.
박슬기= 스킨, 로션을 꼼꼼히 바르고 야외활동이나 밤에 놀러 갈 때는 비비크림을 사용한다. 아직까진 미백이나 주름 같은 기능성 제품보다는 로드숍 매장에서 대표제품으로 꼽히는 상품을 다양하게 사서 써보는 편이다.
윤두석= 아침보단 밤에 신경을 더 쓴다. 아침에는 스킨과 비비크림을 바르고, 밤에는 에센스와 아이크림까지 챙겨 바른다. 이틀에 한번씩은 마스크팩, 수분팩을 한다. 무엇보다 신경 쓰는 건 헤어스타일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을 찾아 간단하게 펌을 하는데 머리 모양을 내기에 편하다.
-원래부터 꾸미는 것을 좋아했나, 화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오= 대학 때 연극영화과를 다니며 피부관리나 메이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연출 쪽에 관심을 두다 지금은 광고회사에 다니는데 직업상 상대방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하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피부관리를 위해 챙겨 바르기 시작했다.
윤= 어릴 때부터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왁스, 컬러로션을 바르기 시작했다. 오히려 누나는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어 누나와 뒤바뀌었다는 얘기도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대학 때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영화도 찍고 하면서 외모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가족끼리 외출할 때도 제일 준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박= 군대에서 화장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군대 생활이 피부가 안 좋아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인 것 같다. 서로 화장품을 빌려 써보기도 하고 정보도 교환했다. 지금은 전공인 의류 마케팅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스킨푸드의 서포터즈로 지원해 활동하면서 여러 화장품 정보도 얻고 있다.
-외모관리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그리고 비용은 얼마나 드나.
박= 화장품은 한번 사면 3개월은 쓰고, 또 로드숍 제품을 주로 이용하니 크게 부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옷에 관심이 많은데 학생이라 큰 소득은 없어도 월 평균 20~30만원 정도는 옷을 사는 편이다. 패션 트렌드에 민감해 한 번에 사기 보단 시즌마다 꾸준히 구입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경을 쓰는 것은 운동이다. 저녁에는 약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새벽에 운동을 하고 힘들어도 매일 20~30분은 꼭 운동을 한다.
오= 화장품이나 옷보다는 오히려 몸을 만들면 어떤 옷을 입어도 어울리므로 몸을 만드는 데 치중한다. 술, 담배는 멀리하고 회사에 있는 헬스장을 이용해 일주일에 2번 정도는 트레이너와 운동을 한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과 샤워를 마치고 회사로 출근한다. 얼마 전 뉴욕여행에선 오래 입을 생각으로 한꺼번에 많은 옷을 샀다. 앞으로 2,3년은 옷 걱정 안할 것 같다.
윤= 다른 사람들보다 모자나 신발 등 잡화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운동이다. 7시에 일어나 자전거로 출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요즘엔 실내 자전거 운동인 스피닝에 푹 빠졌다. 또 오늘 어떤 화장품을 써야 하는지, 정해진 운동은 했는지 모바일 앱(응용소프트웨어)을 이용해 꼼꼼하게 체크한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나.
오= 사실 이렇게 피부관리, 운동관리를 한다고 대놓고 얘기해 본 적은 처음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남자가 피부나 몸에 신경을 쓴다고 하면 오히려 까다롭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굳이 티 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 남자들의 외모관리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예전보다는 긍정적 시선이 많아진 것 같다.
윤= 예전에 여자친구가 집에 놀러 온다고 하면 화장품을 숨겼다. 관리하는 티를 내기 싫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남자가 화장품에 관심을 갖고 관리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꾸미는 것이 남성의 여성화라고 보는 시작도 있는데.
박= 관리를 잘한다는 게 여봄볜눼募?것과 같은 말은 아니다. 아름다운 여성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동경의 대상이지 않은가. 남성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자기 관리를 위해 부지런한 것은 여성스러운 것과는 다르다.
윤=두 분 이야기에 공감한다. 남자들도 사회관계형서비스(SNS)를 많이 이용하는 데 이 역시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성별에 관계없이 자기를 관리하고 꾸미는 것도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진행·정리=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최영지 인턴기자(숙명여대 통계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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