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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2일간의 고문 아프게 찍었다… 관객도 아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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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2일간의 고문 아프게 찍었다… 관객도 아팠으면"

입력
2012.11.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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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분의 디테일한 고문 묘사

어떤 다른 작법 가능하겠나

모진 고통 견뎌 일군 민주주의

소홀히 여기는 것 아닌지 질문

너무 힘들어 이제 좀 쉬고싶다

"대선에 영향 줬으면" 발언 논란

특정 후보 편드는 것 아냐

세 후보 모두 이 영화 봤으면

박근혜 눈물땐 지지율 안 오를까

"나는 사나운 사람 아니다"

문제 알며 침묵하는 것 못견딜 뿐

작품통해 사회적 발언 당연한 것

감추거나 숨기고 있는 일 훔쳐

영화로 포장 팔아먹는 난 도둑놈

올해 한국 영화계가 이룬 성취는 눈부시다.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 두 편의 1,000만 관객 돌파,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건축학 개론' 등 400만 명을 넘긴 '중박' 영화 봇물, '두 개의 문'을 비롯한 독립ㆍ다큐 영화들의 선전…. 다방면에서 고루 성과를 낸 한 해였지만, 훗날 2012년 영화계를 돌이킬 때 꼭 기억해야 할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 정지영(66) 감독이 아닐까 싶다.

올해 데뷔 30년을 맞은 정 감독은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등 굵직한 작품들로 일찍이 명감독 반열에 올랐으나, 98년 '까'의 흥행 실패 이후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 무려 13년. 명검도 녹슬 만한 긴 침잠 속에서 그의 칼은 오히려 더 단단하게 벼려졌나 보다.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이 올 초 흥행 돌풍(344만 명)을 일으키며 '거장의 귀환'을 알린 데 이어, 고 김근태 의원의 수기 을 토대로 한 신작 '남영동1985'(22일 개봉)에도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동 기획자이자 인터뷰어로 참여해 한국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짚은 다큐 '영화판'도 12월 극장을 찾는다. 한창 전성기의 젊은 감독들도 혀를 내두를 왕성한 활동도 놀랍지만, 거액을 쏟아 부은 소위 때깔 좋은 영화들 사이에서 묵직한 메시지와 우직한 화법으로 깊은 울림을 빚어낸 노장의 뚝심이 더욱 빛난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에게 '영화인생 30년 중 가장 뜨거운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소감부터 물었다. 제목거리가 될 만한 멋진 말을 들으리란 기대는 바로 깨졌다.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에두르거나 애써 꾸미지 않은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들은, 흔히 직구로 표현되는 그의 작품 화법을 빼 닮았다.

-긴 공백기에도 각종 집회, 시위에 부지런히 참여했다. 과연 쉴 수 있을까.

그냥 있으면 여기저기서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 깊은 산골 같은 데 숨어서 한 1년 뒹굴뒹굴하며 지내련다.(웃음) 지난 2, 3년을 정말 숨가쁘게 보냈다. 나를 이렇게 혹사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가.

딱히 어디가 아픈 건 아닌데, 심신이 다 지쳤다. '남영동1985'의 후유증이 크다. 촬영기간이 한달 남짓이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관객들이 그저 구경꾼처럼 바라보며 '아, 고문이 저런 거구나' 이러고 말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진짜 아파하게 만들려니 감독도, 배우들도 아플 수밖에 없었다.

스크린을 여는 것은 짙은 어둠이다. 철커덕 철문 열리는 소리에 이어 플래시 불빛이 한 남자를 비춘다. 영문도 모른 채 발가벗겨진 남자는 겨우 한마디 묻는다. "여기가 남영동입니까." 비웃음을 흘리는 수사관들의 집단 구타가 이어지고, 남자는 또 영문도 모른 채 꽁꽁 묶여 물이 가득 찬 욕조에 거꾸로 처박힌다.

1985년 9월 남영동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 515호에서 민청련 전 의장 김종태(박원상)가 겪은 22일간의 모진 고문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들이 원한 것은 '북괴와 연계된 폭력혁명'을 기도했다는 자백과 배후 폭로였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하던 김종태는 '장의삿집 둘째 아들'로 불리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이 등장하며 서서히 무너져간다. 스크린에는 "밑바닥에 닿지 않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질식해 가는 물고문… 핏줄을 뒤틀어 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를 끊어 버리는 것 같은 전기고문"( 67쪽)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객석에서 지켜보는 이들에게 고문 과정은 오히려 견딜 만하다. 그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고문을 끝낸 이두한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휘파람으로 '클레멘타인'을 부는 순간, 객석을 엄습하는 공포는 최대치에 이른다. 형언하기 어려운 묵직한 아픔, 지극한 슬픔이 명치 끝을 옥죄어 온다.

회상 및 환상 신을 빼고는 고문과 밤샘 신문으로만 채워진 106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 건 탁월한 캐릭터와 심리 묘사 덕분이다. 처참하게 죽어가는 인간을 곁에 두고 태연히 야구 중계를 듣고, 애인에게 차인 분풀이를 하고, 승진시험 공부를 하는 수사관들의 모습은, 정치철학자 한?아렌트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그렇게 묻는다. 이 어처구니없는 과거를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며 눈 질끈 감고 잊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고문 그 자체를 집요하게 다룬 영화는 전례가 없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8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임철우의 '붉은 방'을 읽고 고문 가해자 얘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지난해 말 김근태 의원이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뒤 수기 을 읽고 다시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고통스럽게 싸웠는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85년 22일간의 기록에 집중하게 됐다.

-'부러진 화살'이 흥행 가도를 달릴 때 바로 제작에 들어갔는데.

한마디로 필이 꽂혔다. 2월 한 달간 충북 청주의 한 농장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썼다. 초고 제목은 '야만의 시대'였는데, TV 미니시리즈 제목 같다고 해 바꿨다.(웃음) '부러진 화살'이 한창 흥행할 때라 전보다는 돈 빌리기가 수월했다. 나중에 투자 받은 것까지 합쳐 순제작비만 5억원이 들었다. 김근태 의원 부인인 인재근 의원에게 허락을 받고 "(원작료로) 우선 1,000만원만 드리고 나중에…" 하고 말을 꺼냈더니, 대뜸 "돈이요? 저 돈 많아요" 하더라. 4ㆍ11 총선 치를 때라 단돈 100만원이 아쉬웠을 텐데…. 그렇다고 공짜로 쓰는 건 염치없고 러닝 개런티 형식으로 드리기로 했다.

-영화의 대부분을 적나라한 고문 과정으로 채웠다. '보고 싶지만 보기가 두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적나라한 묘사 외에 다른 작법을 고민해보지는 않았나.

남영동 515호실이 무대인데, 어떤 다른 작법이 가능할까. 나는 관객들을 그 22일 안에 가둬놓고 싶었다. 고문 과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해서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었다. 수많은 분들이 그 모진 고통을 견디며 일궈온 민주주의를 지금 우리는 너무 소홀히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갇혀서 그 아픔을 나눈 사람들이라면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훼손될 때 나 몰라라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고문 과정을 생생하게 재연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30여명의 고문 피해자를 만나 증언을 들었다. 주인공 김종태에는 김근태 의원만이 아니라 이 분들이 투영돼있다. 증언에는 볼펜 심을 요도에 박아 넣는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직한 고문들이 많았지만, 차마 담을 수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적군에 포로로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도 끝까지 애국하는 영웅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증언을 들어보면 차라리 죽여주기를 바라거나 시키는 대로 따르거나, 그 길밖에는 없다.

-실제 고문에 가깝게 촬영하면서 위험한 상황은 없었나.

박원상은 그의 말대로 "부모님이 주신 튼튼한 체력"으로 잘 버텨줬다. 궁리 끝에 그가 오래 버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건 개봉 후 관심을 끌 때 공개하겠다.(웃음) 주연배우를 선택할 때 무엇보다 지금 나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했다. 직접 고문 당하는 연기를 믿음 없이 어떻게 하겠나. '부러진 화살'에서 박준 변호사를 연기한 박원상 말고는 답이 없었다. 전작의 흥행으로 작품 섭외가 많이 들어왔는데도 물리치고 와줬다. 사실 '부러진 화살'이 버디무비 성격이라 박 변호사 역할도 주인공 안성기씨 급은 돼야 한다고 생각해 여러 배우를 접촉했지만 다 거절당했다. 박원상이 후보군에 올라있긴 했지만 돌고 돌아 자기한테 왔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나. 미안한 마음에 "내게 연기로 복수하라"고 했다. 이번 작품까지 멋지게 복수를 한 셈이다.

-드라마에서 '꽃중년' 이미지로 소비돼온 이경영의 연기 변신이 놀랍다. 외모는 딴판이지만, 고문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놨다는 악한 이근안(극중 이두한)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경영은 연기 천재다. 안성기가 철저히 계산을 해 빈틈없는 연기를 한다면, 이경영은 그때그때 필을 받아 연기하는 스타일이다. '부러진 화살'에 재판장으로 짧게 등장했지만, 탁월한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과거 불미스런 사건으로) 데미지를 많이 받았는데, 좋은 연기자로 돌아오게 하고 싶었다. 단번에 오케이 하지 않길래 '이경영이 이두한을 연기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적어 이메일로 보냈다. 영화에 찔끔찔끔 얼굴 비치지 말고 다시 돌아왔다는 걸 확실히 보여야 할 것 아니냐, 일평생 이런 캐릭터는 다시 만나기 힘들다…. 연기자의 본성인 배역 욕심을 막 자극했더니 바로 넘어왔다.(웃음)

-부산국제영화제에 첫 선을 보인 이후 "이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대선을 겨냥한 좌파의 정치 선동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특정 후보 편을 들겠다는 게 아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 모두 VIP 시사회에 초청杉? 문, 안 후보는 참석이 확정적이고, 박 후보도 그날은 못 오지만 보긴 보겠다고 했다. 이 분들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그에 대해 국민이 어떤 평가를 내리는 과정 자체가 영향이라고 보는 거다. 예를 들어 박근혜 후보가 이 영화를 보고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과거 청산에 관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다면 지지율이 확 오르지 않겠나.

-'부러진 화살'만큼의 흥행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어휴, 힘들 거다. '부러진 화살'은 원칙주의자인 주인공의 다소 엉뚱한 캐릭터가 빚어내는 웃음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다르지 않나. 장률 감독은 극장에서 관객들이 그렇게 흐느껴 우는 걸 본 적이 없다며 '부러진 화살' 이상의 흥행을 장담하더라. 마음 같아서야 전 국민이 봤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기자회견에서 이경영이 정 감독을 일러 "현자(賢者)의 시선을 가졌다"고 평했고, 김의성(강과장 역)은 "청년의 심장을 가진 분", 이천희(김계장 역)는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말을 보탰다. 어떤 평가가 가장 마음에 드나.

청년의 심장! 현자는 어림도 없다. 소년의 시선이 딱 맞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무모한 면도 있다. '이게 내 캐릭터구나' 하고 살지, 잘났다고 우길 생각 없다.(웃음)

정 감독은 고향인 청주 출신 유명인들의 수필을 엮은 에 실린 글에서 악동 시절부터 이어진 소소한 도둑질을 고백하며 이렇게 썼다. "나는 분명 도둑놈이었다. 지금도 우리가, 역사가, 사회가 감추거나 숨기고 있는 일을 훔쳐내 영화로 포장해 대중에게 팔아먹는 도둑놈이다."

'정지영의 영화관을 함축한 말이냐'고 묻자, 그는 껄껄 웃으며 "영화감독이든 소설가든 예술가들은 다 그런 사람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 감독은 중학생 시절부터 "예쁜 여배우들 보러" 극장을 드나들던 헐리우드 키드이자 "집에서 책방을 한 덕분에 일찌감치 본격문학을 접한" 문학 소년이었다. 전쟁 이후 가치 혼돈의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좌절과 고통에 천착한 이른바 전후문학에 매료됐던 그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고교 1학년 때. 이범선의 단편소설 '오발탄'과 동명영화의 시나리오, 영화를 차례로 접하며 영상 창작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나서다. 재수 끝에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지만 "돈 드는 영화는 안 찍고 몸으로 때우는 연극만 하는" 환경에 실망해 고려대 불문과로 옮겼다. 그 후 데뷔작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의 개봉이 지연되는 사이, MBC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2년간 드라마 연출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영화판을 떠나지 않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기점이 된 87년 민주항쟁"은 서슬 퍼런 검열의 시대에 짓눌러 멜로물을 주로 만들던 그에게도 이른바 '사회파 감독'으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됐다. 작품 활동 틈틈이 UIP 영화 직배 반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등 투쟁에도 앞장섰고, 13년의 공백기에도 국가보안법 폐지, 이라크 파병 반대 등 각종 집회에 참가해 신문 사회면에 얼굴을 비쳤다.

-대표적 '운동권 감독'으로 통한다. 다큐 '영화판'에서도 이창동 감독이 두 분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말에 "거칠고 무식한 저 사람과 내가 왜 비슷하냐"고 펄쩍 뛰던데.

아~하하하하. 직배 반대 투쟁할 때 극장에 뱀 풀었던 사건 이후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진 듯하다. 극장에서 쉬쉬하고 해프닝으로 끝난 건데 한참 지나 방화 사건이 터지자 이걸 엮어 넣어 구속시켰다. 한창 '남부군' 촬영할 땐데, 두 달 감옥살이 하느라 못 찍은 여름 신을 겨울에 소나무밭에서 (입김이 안 나게) 배우들 입에 얼음 집어넣고 찍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다들 침묵하는 상황을 못 견딘다. 그래서 한마디 하면 다들 '맞아, 맞아' 하고 그러다 보니 앞장서는 모양새가 된 것뿐이다. 나는 절대 사나운 사람이 아니다. 지금 딱 보면 알지 않나. 얼마나 착하고 순한 사람인지….(웃음)

-공교롭게도 가장 치열하게 투쟁을 하는 동안 작품을 전혀 찍지 못했다.

작품 활동과 영화운동 가운데 당연히 작품을 더 중시한다. 작품을 통해 얼마든지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지 않나. 영화운동가? 이런 호칭도 정말 싫다. 모든 영화인은 영화운동가여야 하고, 모든 문화인은 문화운동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견해 표명을 곱지 않게 보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이건 잘못됐다. 딴따라든 누구든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다. 이걸 두려워하고 포기하거나 경원시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 아닌가.

-다큐 '영화판'에서도 지적했지만, 결국 상업성을 앞세운 '자본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 긴 공백의 주된 이유일 텐데, 독립영화 성격의 저예산 작품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건가.

'부러진 화살'도 처음부터 저예산으로 가려 한 건 아니다. 대기업 투자를 받막?애썼지만 실패했고, '남영동'은 더 민감한 작품이라 어려웠을 뿐이다. 대기업 제작사들의 상업성 논리를 뛰어넘은 '부러진 화살'의 성공이 다양성을 잃어가는 영화계에 자극이 되었기를 바란다. 관객들은 다양한 메뉴를 원하는데 상업성만 따져 똑 같은 메뉴만 내놓다 보면 영화계는 공멸한다. 혹시 '남영동'도 잘 되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영화를 되게 한' 정지영을 대기업들도 좀 달리 대접해주지 않을까. 절대 대기업을 배척할 생각 없다.

-언제까지 현역으로 뛸 생각인가.

대중이 나를 외면할 때까지! 80, 90년대 활동했던 동년배 감독들이 늙은이 취급 당하고 투자를 잘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도 꾸준히 작품을 쓰고 있는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영화가 더욱 풍성해지고 오래 갈 수 있다.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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