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검사급 검찰 고위 간부가 '다단계 사기왕' 조희팔씨의 측근과 유진그룹 간부로부터 8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검찰개혁을 외치는 상황에서 검찰 간부가 경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 놓이자 당혹스런 분위기가 역력했다. 대검은 9일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한 듯 곧바로 특임검사를 지명하고 직접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사건 가로채기' '이중 수사'라며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라 수사권 조정 문제에 이어 검경이 다시 충돌하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검찰 "경찰, 불순한 의도 수사" 반발
검찰 내부에서는 일단 평검사들을 중심으로 A검사의 처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수부 출신의 한 검사는 "A검사는 특수수사를 많이 해봤을 텐데 조희팔 측근처럼 문제되는 사람과 돈 거래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대검의 한 연구관은 "조직 전체를 위해 A검사가 문제될 게 없더라도 반성부터 하는 게 우선인데 변명만 잔뜩 늘어놓아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번 사건에 검사 2, 3명이 추가로 연루돼 있다고 밝히는 등 '강공 모드'로 나오자 일각에서는 "검찰의 운명이 경찰 손에 달렸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터져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평검사는 "대가관계 운운하는데 일반인이 이 정도 혐의였다면 검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속했을 것"이라며 "검사에게는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검찰청의 또다른 평검사는 "검찰이 주도한 '룸살롱 황제' 이경백 수사와 저축은행 수사에서 검찰 관계자가 제대로 걸린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특임검사 투입은 검찰의 신뢰도만 깎아먹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이 불순한 의도로 수사하고 있다는 의견도 적지않았다. 대검의 한 간부는 "경찰이 대선 정국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가 불거질 경우에 대비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행한 수사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내사 단계에서 언론에 흘릴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중간 간부는 "A검사의 소명이 합리적으로 판단돼 무혐의 처분될 경우 훼손된 명예는 누가 보상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경찰 "A검사 사법처리" 의지 강경
파문이 확산되자 A검사는 이날 오전 해명자료를 냈지만, 경찰은 조목조목 반박하며 사법처리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A검사는 "2008년 5월 고교 동기로 친구인 강모씨(조희팔씨의 측근)로부터 돈을 빌렸지만 차용증과 이자약정 등 적절한 절차를 거쳤고 2009년까지 모두 변제했으며 객관적 증빙도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강씨는 조희팔이 중국으로 도피했던 2008년 12월 이전에 이미 중국으로 떠났다. 어떻게 갚았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반박했다.
A검사가 유진그룹 측으로부터 6억원을 받은 사실을 놓고도 공방이 이어졌다. A검사는 "처의 암 투병 등으로 급하게 집을 옮겨야 할 상황에서 후배로부터 돈을 빌려 전세금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5,000만원은 유진그룹 직원과 가족 등의 명의로 받았는데, 떳떳하다면 이럴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특임검사 지명 놓고도 검경 갈등
검찰의 이날 특임검사 지명을 놓고도 양측은 충돌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형사소송법상 보장된 경찰의 수사 개시를 방해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경찰은 오늘 A검사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다고 검찰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경찰에서 수사 개시 통보가 오면 법 규정에 따라 송치 지휘를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1월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찰은 경찰이 수사를 개시한 사건에 대해 송치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경찰의 "(A검사와 공범인) 차명계좌 소유주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이미 입건했기 때문에 현재까지의 수사는 내사가 아닌 수사 단계"라는 반발에 대해서도 검찰은 "규정상 4급 이상 고위공무원에 대해서는 계좌추적이나 영장 신청 등과 관련 없이 수사를 시작하면 수사 개시보고를 하게 돼 있는데, 보고 전이었기 때문에 경찰 수사는 엄연한 내사 단계"라고 반박했다.
물론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무시하고 향후 독자적으로 수사를 할 개연성도 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갈등이 극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경찰이 신청할 A검사에 대한 계좌추적 등 영장에 대해 검찰이 '같은 사안으로 두 기관에 수사를 받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이유로 기각할 수 있는 등, 경찰로서는 사실상 수사의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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