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경제가 나빠진 것을 일자리를 통해 감지한다. 40년을 승승장구하던 현대중공업이 처음으로 희망퇴직자를 모집하고 있다. 세계 제1의 조선소에까지 불황의 그늘이 들었다는 신호다. 더 놀라운 사실은 3억~4억원의 명퇴금을 내걸며 2,000명의 희망자를 기대했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신청자는 60여명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당장의 몫 돈보다는 안정된 직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초유의 장기 침체에 빠져있다. 지난 3분기 성장률이 0.2%에 그침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2분기 이후 6분기 연속 1% 미만의 분기별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별한 경제적 쇼크도 없는 상태에서 장기 저성장 기조가 지속된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오죽하면 고도성장의 상징이었던 조선과 철강 회사들까지 감원을 고려하겠는가. 몇몇 사업장의 인력감축이 경제 전체의 고용감소로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좋은 일자리가 줄고 나쁜 일자리는 늘어나니 문제다. 비유하자면 현대중공업의 일자리가 영세자영업 일자리로 바뀌고, 20대의 고용이 줄고 50~60대 자영업자가 증가하는 식이다. 경기침체가 깊어질수록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완전히 엎친 데 덮치는 꼴이다. 노동시장에는 이미 근로자 3명 중 1명꼴인 600만 명의 비정규직이 있고, 6명에 1명 정도로 폐업 위기에 몰려있다는 520만 명의 도시자영업자가 있다. 또한 안정된 일자리에 목을 매는 100만여 명의 청년 구직자와 미래가 불안한 50대의 베이비부머들도 있다. 정부도 지난 15년 간 온갖 노력을 다했고 몇 차례의 반짝 경기도 있었지만 고용은 L자형 장기 정체상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우리 경제도 이제 만성적인 고용위기라는 유럽병에 걸린 듯하다. 일자리의 해법도 유럽을 닮아가고 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길인지도 모른다.
3명의 대선 후보들도 고용을 시장에 맡기자는 쪽보다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쪽이다. 노동시장의 강자들이 희생하고 양보하여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의 고용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만병통치약으로 세계를 풍미하던 노동규제 완화나 시장주도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신자유주의 신화가 깨지면서 다른 대안도 없다. 고용에 관한 한 여야나 보수와 진보의 정책적 차이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정부의 능력이다. 달리 말하면 정책 메뉴보다 정부(거버넌스)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주요 대선 공약으로 나와 있는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정책이나 임금과 근로시간을 줄여서라도 일자리를 늘리자는 워크셰어링 정책은 정부의 결단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주요 경제주체들의 양보와 타협에다가 실행과정에서의 긴밀한 공조가 없으면 공염불이 되기 쉬운 정책들이다. 특히 시장의 강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도록 설득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없다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할 정책들이다. 지난 10년이 그랬다. 정당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편을 갈라 좌충우돌하는 동안 양극화는 심화됐고 사회통합은 더 힘들어졌다. 좋은 정책이 아니라 바른 정치와 국가리더십이 부족했던 것이다.
새 정부는 내년 출범하자마자 불안한 경제와 고용한파에 대한 긴급대책뿐 아니라 대선 공약 실천의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누가되더라도 다음 정부는 반대파와 기득권을 제압할 정도의 압도적인 지지와 정치세력을 갖지 못할 전망이다. 차라리 승자독식의 유혹에서 벗어나 솔선수범의 자세로 권력을 나누고 나서, 시장의 강자들도 양보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정치권력(대통령, 국회, 중앙정부, 검찰 등)이 희생의 모범을 보이고 경제권력(공공기관과 금융기관, 재벌 대기업, 노동조합 등)도 고용을 위한 사회책임을 자임하고 나서는 것이 순리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사람들이 먼저 양보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위한 연대와 타협은 불가능하다. 정부와 시장이 손을 잡고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전사회적인 양보의 연합이 필요한 때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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