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고 시절 4연타석 홈런으로 유명세를 타는 등 큰 기대감을 안고 프로에 입단한지 벌써 8년 차. 그 동안 '미완의 대기'였던 그가 9회말 터진 역전 만루홈런처럼 올 시즌 비로소 만개했다. 붙박이 4번 타자 박병호(26ㆍ넥센)는 올해 133경기에 나가 타율 2할9푼 31홈런 105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5일 열린 2012 팔도프로야구 정규시즌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많은 것을 이룬 박병호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매일 오전 10시 반에 목동구장에 출근,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8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박병호는 밝은 표정이었다.
난 50점짜리 남편
시즌 내내 야구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박병호는 10월초 정규 시즌이 끝나자 마자 휴식을 취했다. 그는 "올해 연봉으로 해외는 힘들고 아내와 함께 부산, 경주 등 국내 여행도 많이 다녔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실컷 봤다"고 웃으며 말했다.
야구 선수 박병호가 아닌 남편 박병호는 과연 어떤 사람일지 문득 궁금했다. 지난해 12월 이지윤 전 KBS N 아나운서와 결혼한 그는 "시즌 때는 힘들지만 요새는 아내가 빨래하면 같이 널기도 하고, 설거지 할 때 음식물 쓰레기도 갖다 버리고 함께 마트도 간다"면서 "그냥 일반 남편들과 똑같다"고 쑥스러워 했다. 박병호는 "시즌 때는 0점짜리 남편이지만 지금은 그래도 한 50점짜리 남편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아직까지 집에서 아내와 함께 보내는 것이 즐겁다는 박병호는 "아내와 같이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도 하고 시즌 때 못했던 것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화려한 프로 데뷔, 그리고 좌절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의 권유로 처음 시작한 야구는 그에게 즐거움 그 자체였다. 영남중-성남고 시절 항상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야구를 했다. 성남고 3학년 때 4번 타자로 나가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박병호는 2005년 LG의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으로 3억3,000만원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프로에 데뷔했다. 신인으로 개막전에 6번 1루수로 선발 출전했지만 의욕처럼 모든 것이 잘 되지는 않았다. 첫해에 79경기에 나가 타율 1할9푼으로 부진했다. 그는 이후에도 2군에서는 홈런을 펑펑 터트렸지만 유독 1군에 올라오면 기회를 잡지 못하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박병호는 "정말 힘들다 보니 스스로 '난 결국 2군 선수 밖에 안 되는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김기태 LG 감독, 이종열 허문회 LG 코치, 김병곤 트레이너가 없었다면 아마 야구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가족에게 쉽게 터놓을 수 없었던 힘든 것들을 많이 이야기했었고 그럴 때마다 그 분들이 나를 잡아줬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넥센으로의 트레이드, 제2의 야구 인생
박병호는 정확히 지난해 7월31일 2대2 트레이드를 통해 LG에서 넥센으로 왔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새로운 팀에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김시진 전 감독님께서 첫 말씀이 '무조건 4번으로 뛰게 해주겠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셔서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기회의 땅에서 '자신감'이라는 날개를 단 박병호는 올해 박흥식 넥센 타격코치를 만나면서 더욱 업그레이드 됐다. 그는 30홈런-100타점뿐만 아니라 생애 첫 '20홈런-20도루'라는 기록도 세웠고 MVP 수상으로 그 방점을 찍었다. 박병호는 "1년 전만 해도 감히 MVP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간절한 소망, '국가대표' 박병호
이제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가 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그에게는 또 다른 소망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시절까지 국가대표를 계속해왔지만 프로 이후에 한번도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었다. 누구보다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그는 이승엽(삼성), 김태균(한화), 이대호(오릭스) 등 쟁쟁한 선배들과 1루에서 경쟁해야 한다. 박병호는 "어렸을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무대에서 뛰는 것을 꿈꿨다"면서 "아무래도 국제 대회에 나가서 뛰다 보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올해 포스트시즌 경기를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안타까웠다고 밝힌 그는 "올해는 정말 잘 모른 상태에서 한 시즌이 훌쩍 지난 것 같다. 비 시즌 동안 자만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에는 꼭 가을에도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