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의
화가
신문과 방송의 첫머리를 대선 후보들이 거의 매일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니 결전의 날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이런 때일수록 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열을 올린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하여 유권자들에게 친숙하고,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작업을 일컫는 ‘좋은 그림 만들기’를 통해 후보자들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이렇게 구축된 이미지는 자신의 표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신발과 옷, 액세서리, 헤어스타일 등등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모습을 우리는 해당 후보의 평소 모습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보통 평소의 모습을 가장해 세밀한 부분들이 치밀한 계산을 통해 표현된다. 그 만큼 좋은 그림 만들기에는 맵시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좋은 그림을 만들기’의 정점은 다른 데 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어떤 모습이나 포즈로 사진기자들에게 찍히느냐 하는 것이다.
후보와 함께 사진에 등장한 사람의 이미지는 곧바로 후보에게 입혀진다. 이 이미지는 후보의 단점을 메워 줄 수도 있고, 후보가 말하고자 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손쉽게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후보가 아기를 어르거나 안는 사진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고, 역경을 딛고 선 스포츠 스타와 함께 한 사진은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고난을 그 후보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표현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후보들은 좋은 그림 만들기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인다. 그러나 애써 만든 그림이라 하더라도 가끔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후보가 아이와 대화하며 환하게 웃고 있지만 아이는 시큰둥해 하는 때가 있고, 초면의 시장 상인들에게 환한 웃음을 유도해보지만 싸늘한 표정으로 후보를 외면하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좋은 그림을 만들려는 노력이 과할 때 더러 생기는 현상이다.
좋은 그림 만들기의 성공적인 사례로 2009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촬영된 한 장의 사진이 종종 언급된다. 백악관에서 임시직으로 근무하던 칼튼 필라델피아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퇴직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대통령의 집무실을 방문했을 때 찍힌 사진이다. 그의 다섯 살짜리 아들 제이콥은 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짧고 곱슬곱슬한 머리로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대통령의 머리 감촉이 자기의 머리와 같은지 알고 싶다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네가 직접 만져보면 되지 않겠냐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허리를 접어 자신의 머리를 아이의 손 높이까지 내렸다. 호기심 어린 눈빛의 꼬마를 손을 올려 대통령의 머릿결을 만졌고 “똑같아요”하는 순간이 사진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 이 사진은 오바마 대통령의 집무실 서쪽 벽에 3년째 걸려 있으며 백악관 참모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라고 전해진다.
오바마 대통령이 어린 아이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인 사진이 백악관 참모들이나 미국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가져주고 있는 것은 ‘포샵’을 의심 받을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사진이 연출되거나 의도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그림이란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만들어진 진솔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선 후보들의 좋은 그림 만들기 경쟁은 선거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그러나 의도를 가지고 연출된 사진이나 영상은 자연스럽지 못할뿐더러 감동도 없다. 오바마의 머리를 마지는 꼬마의 사진에서처럼 풍성한 뒷이야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그림은 그저 그렇고 그런 그림의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그림이 쌓이고 쌓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정치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사진을 통해 전해지는 이미지가 허상이 아니라 내용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언행일치로, 실제적인 정책으로 국민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후보자의 그림이 가장 좋은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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