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위 미세한 혈관 수술때 기존 현미경 수술 시야확보 한계안면마비·청력저하 부작용 해소외국 논문 참조하며 독학 열정 2008년 이후 환자 40명에 '웃음'신경외과학술대회 '톱10' 선정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첫인상은 많은 걸 결정짓는다. 어떤 이는 첫인상으로 상대방의 성격이나 진심을 추정하고, 어떤 이는 첫인상에 따라 앞으로 만남을 이어갈지 말지를 선택한다. 첫인상을 좌우하는 신체 부위, 두말 필요 없이 얼굴이다. 그 얼굴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도 때도 없이 파르르 떨린다면 어떨까. 이 같은 안면 경련 증상을 겪는 환자들은 그래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신경을 진정시키는 약이나 보톡스 주사로 증상이 개선될 수 있긴 하지만, 일시적이다. 결국은 수술이 답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안면경련 수술팀을 갖추고 있는 병원은 국내에 몇 안 된다. 그 가운데서도 내시경을 써서 수술하는 의료진은 극히 드물다. 그 중 한 사람이 이승환 강동경희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다.
뇌혈관이 안면 신경 자극
자그마치 15년 동안 오른쪽 얼굴이 계속해서 실룩실룩 떨리는 증상을 겪어온 한 60대 남성이 얼마 전 이 교수를 찾아왔다. 최근 대중 매체에서 접한 비슷한 사연을 통해 자신의 증상이 안면경련이 아닐까 의심해보기 전까지는 그냥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너무 괴로울 땐 좋다는 약을 찾아 먹고 한방 치료도 해봤지만 번번이 증상은 다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남성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했다. 예상대로 남성의 안면신경(뇌와 얼굴 근육을 연결하는 신경)이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뇌혈관에 눌려 있었다. 때문에 뇌혈관이 심장의 움직임에 따라 박동할 때마다 안면신경을 자극하고, 동시에 이와 연결된 얼굴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전형적인 안면 경련이었다.
이 교수는 "안면경련 환자 대부분이 자신의 병에 대해 정확히 모른 채 방치하거나 엉뚱한 치료를 하다 뒤늦게 병원을 찾는다. 또 눈 밑에 떨리는 안검경련과 헷갈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안검경련은 커피를 많이 마셨거나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신경이나 혈관과 상관 없이 일시적으로 눈 밑이 떨리는 증상이다. 수술은 물론 별다른 치료 없이 그냥 푹 쉬면 사라진다.
그런데 남성의 MRI 영상을 확인하니 안면신경을 압박하고 있는 뇌혈관이 생각보다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머리 부위의 미세한 혈관을 수술할 때 보통 쓰는 수술 현미경만으로는 압박 부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고해상도 내시경이다.
해상도 SD 영상 vs HD 영상
일반적으로 안면경련 수술은 귀 뒤쪽 피부를 5~7cm 정도 자른 다음 수술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서 진행한다. 귀 피부 아래의 근육을 잘라 벌리면 경막(뇌의 가장 바깥을 싸고 있는 막)이 보이고, 이를 째면 소뇌가 나온다. 소뇌를 살짝 누르면 그제서야 안면신경과 이를 누르고 있는 뇌혈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고 안면신경과 뇌혈관 사이에 솜을 넣어 접촉을 차단해주면 된다(미세혈관 감압술).
문제는 소뇌다. 사람의 뇌는 마치 두부처럼 물렁물렁하다. 조금만 힘을 줘도 두부가 으깨지듯 손상된다. 수술 중 집도의가 안면신경을 찾다가 자칫 소뇌를 너무 눌러버리면 수술 후 환자가 어지러워 하거나 작은 물건을 잘 잡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심한 경우 안면마비나 청력 저하 같은 합병증까지 생길 우려도 있다. 안면신경을 누르고 있는 뇌혈관이 너무 깊숙이 자리잡고 있을 때는 수술 현미경만으론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해 특히 위험하다.
고해상도 내시경이 유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교수는 "수술 현미경으로 보는 영상이 SD급 TV 화면이라면 고해상도 내시경 영상은 HD급"이라며 "고해상도 내시경을 쓰면 수술 부위를 훨씬 뚜렷하게 볼 수 있어 소뇌를 무리하게 건드릴 일이 없기 때문에 더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15년 동안 안면 경련을 앓던 남성도 고해상도 내시경으로 미세 혈관 감압술을 받은 뒤 합병증 없이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年富力强 신세대 집도의
사실 내시경은 이미 의료계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머리 수술을 주로 하는 신경외과에선 쓰기 어렵다. 예를 들어 복강경(뱃속을 들여다보는 내시경) 수술 땐 뱃속에 공기를 넣고 부풀려 내시경을 비롯한 수술 기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데, 뇌에는 이렇게 공기를 주입할 수 없다. 공기의 압력에도 뇌가 쉽게 손상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비좁은 머릿속에서 내시경으로 미세한 혈관이나 신경을 조작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서야 신경외과 의사들이 안면경련 수술에 내시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바로 이런 외국 논문들을 보며 또槿杉? 그리고 2008년부터 고해상도 내시경으로 미세혈관 감압술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약 40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올 초 열린 대한신경외과학술대회는 이 교수가 발표한 고해상도 내시경 미세혈관 감압술을 학회 '톱10' 성과의 하나로 선정했다. 처음에는 수술 현미경만으로도 충분하다던 선배 의사들이 드디어 후배의 실력을 인정해 준 셈이다.
이 교수는 스스로를 외과계의 '얼리 어댑터'라고 부른다. "새로운 치료를 시도할 수 있는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신세대 외과 의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기존 의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 그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다. "젊은 의사들이 새로운 의술을 많이 배우고 응용해야 향후 기존 의술을 뛰어넘는 더 나은 치료법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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