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하다고 해도 좋다. 빌 게이츠와 같은 거부가 천문학적인 숫자의 기부금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부를 독점한 후 그 돈을 다시 자선활동에 쓰지 말고 처음부터 고루 누리는 데 기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자선이란 얻어 쓰게 하는 것인데 아무리 좋은 뜻으로 베푼다고 해도 받아쓰는 이에게는 고마운만큼 수치스럽기도 하다. 그러니 부가 쏠리지 않고 누구나 평소에 당당하게 일을 하고 제 몫을 넉넉하게 누리는 사회가 훨씬 바람직하다.
물경 1조원대의 국내 최고 장학재단을 키우겠다는 훌륭한 전직 기업가분의 기사를 읽으면서도 만일 기업 구성원들 모두와 진작부터 나눠왔다면 저랬을까가 먼저 떠오른다. 하청 재하청, 인턴이나 실습으로 엮인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과노동의 생사기로에 시달리는데 혼자만 잘사는 기업가들도 많은 세상에서 부동산에 투자했던 돈이 크게 불어나 말년에 좋은 일에 쓴다는 분을 험담할 수는 없으리라. 다만 평소에 함께 누리는 것이 부를 독점했다가 뒤늦게 좋은 일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공유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남 홍성에 유기농을 뿌리내리게 한 홍순명 선생은 생활협동조합도 규모가 커지니까 되려 이익의 10%를 지역주민들의 자활기금으로 내놓는 일이 어려워지더라며 지역민이 이익을 고루 나누는 협동조합 기업을 다시 만들겠다고 했다. 사회운동단체 가운데에도 구성원들의 급료는 차상위 계층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 기부금이 몰리니 건물부터 올리는 곳도 있다. 평소에 바로 그 기관에서 정의와 공평이 실현되지 않는데 멀리로만 외쳐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불공정에 눈감고 멀리로는 올바른 소리를 가장 크게 외치는 곳으로 첫손 꼽히는 곳이 대학이다. 정규직 직원의 처우는 하도 좋아서 '신이 감춰놓은 직장'이라는 평을 받는 대학마다 박봉에 시달리면서 화장실에서 쉬고 밥까지 먹어야 하는 비정규직 청소원이 공존한다. 그런데도 이런 일은 대학이 재정효율화를 위해 아웃소싱을 했기 때문에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아웃소싱 기업과 비정규직 청소원 간의 일로 외면을 당한다.
더욱 오래된 문제는 강사와 교수의 처우 차이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달 초 국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대학교수의 지난해 연봉은 9,014만원(전국 4년제 대학 193곳 평균)이다. 59개 대학은 교수의 평균 연봉이 1억 이상이었다. 부교수는 7,323만원, 조교수는 5,941만원이고 50세쯤 되어서 정교수에 오른다고 해도 적은 돈은 아니다.
반면 한국대학신문이 올 4월 교육부가 공시한 자료를 토대로 2012년 시간강사 강의료를 추산해보니 교수들의 법정책임시간만큼 강사들이 주당 9시간을 강의해도 평균 연봉이 1,186만원이었다. 전임교원 가운데 가장 낮은 전임강사도 이보다 3.6배(4,288만원)를 받는다. 더구나 시간강사의 평균 강의시간은 4.2시간이다.(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투쟁본부 자료) 대학 강사들은 77년 박정희가 지식인들의 정부 비판을 막기 위해 해방 이후 이어져온 교원 지위를 박탈했다. 2011년에 교원 지위는 회복하는 것으로 법은 개정됐으나 사학법 연금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주 16시간 이상 노동을 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상 상근근로자 대접도 못 받는다. 더구나 법정교수의 20%를 강사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면서 8시간 이상 강의한다는 단서를 붙여 대학은 더 싼 값에 법정교수 할당을 채울 수 있게 된 반면 여기서 밀려난 강사들은 강의할 시간을 잃고 수입이 더 줄게 됐다. 이 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교수들이 전혀 힘을 보태주지 않는다.
교수는 언론에서 여론을 주도하고 공공기관 대기업에서 자문을 맡고 대통령 후보 캠프에도 주력이 되어 있다. 곳곳에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당신 바로 곁의 불의는 버려둔다면 그건 그냥 출세를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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