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곳에서 대화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데 시끄러운 장소에선 유독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다. 낮은 소리는 잘 들리지만 높은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부분난청(고음역ㆍ고주파수 난청)이다. 이런 경우 일반적인 보청기로는 별다른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인공와우(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저음 청력마저 확 떨어진다.
지금까지 이도 저도 못한 채 지내야 했던 부분난청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이 최근 등장했다. 바로 보청기와 인공와우를 결합한 EAS(전기음향시뮬레이션)수술이다. 10~12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열리는 '소리 국제 인공와우 심포지엄'에서 이 수술의 임상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기존 인공와우 수술의 한계
외부에서 난 소리가 귀로 들어가면 달팽이관이 이를 감지한다. 그런데 소리의 높낮이(주파수)에 따라 감지하는 영역이 다르다. 높은 소리(고주파수)는 달팽이관의 바깥쪽, 낮은 소리(저주파수)는 안쪽에서 각각 받아들인다. 때문에 외부 소리 자극에 많이 노출돼 있는 고주파수 영역이 상대적으로 손상되기 쉽다. 부분 난청이 대부분 낮은 소리보다 높은 소리가 안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한글의 자음은 달팽이관의 고주파수 영역에서 감지하는 고음, 모음은 저주파수 영역에서 감지하는 저음에 속한다. 부분난청 환자들은 그래서 자음 부분을 특히 더 잘 알아듣지 못한다. 모음 위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이 웅얼웅얼 하는 듯하거나 어눌하게 들리게 된다.
이 같은 부분난청 환자를 위해 보청기를 고음이 잘 들리도록 만들면 잡음이 자주 생긴다. 또 일반적인 인공 와우 수술을 하면 원래 갖고 있던 저음 청력마저 손상돼 인공 와우에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우려가 있다. 보통 인공 와우 수술은 달팽이관에 구멍을 뚫고 소리를 전달하는 전극을 끼워 넣는 방식인데, 이때 전극이 달팽이관 안쪽까지 들어가면서 저주파수 영역에 남아 있는 정상 청각 세포가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등장한 EAS수술에 쓰이는 인공 와우는 일반적인 인공 와우와 생김새가 다르다. 전극의 길이가 짧고 보청기가 함께 달려 있다. 달팽이관에 전극을 넣어도 안쪽까지 깊이 들어가지 않고 고주파수 영역까지만 삽입되기 때문에 저주파수 영역의 청각 세포를 건드리지 않는다. 저주파수 영역의 기능이 떨어진 경우에는 함께 달려 있는 보청기가 역할을 대신해준다. 남아 있는 청력을 유지하면서 부족한 청력만 보완해 주는 방식인 것이다.
잔존 청력 유지하는 치료법
결국 EAS수술의 성패는 남아 있는 청력을 얼마나 보존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기존 인공 와우 수술처럼 전극을 넣기 위해 달팽이관에 구멍을 뚫으면 전극 자체가 짧더라도 달팽이관의 정상 세포들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그래서 EAS수술에서는 구멍을 뚫지 않고 달팽이관으로 들어가는 작은 입구인 정원창을 통해 전극을 삽입한다. 그만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또 사람마다 귀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 정원창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집도의의 경험도 수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개원가에서 활발하게 EAS수술을 하고 있는 소리 귀 클리닉 전영명 원장은 "EAS수술을 받은 전후 환자들의 잔존 청력을 비교한 결과 5~15데시벨(Db)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며 "이 정도 차이는 건강한 사람이 이틀 연속 청력 검사를 했을 때 컨디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오차 범위에 속한다"고 말했다. 수술 전에 남아 있던 청력이 수술 후에도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반대로 고음보다 저음이 잘 안 들리는 부분 난청도 있긴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대부분 고주파수와 저주파수의 청력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전 원장은 "저주파수 난청은 중이나 외이 부분에 문제가 생겼거나 메니에르병 같은 특정 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다"며 "이럴 땐 귀의 문제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EAS수술을 권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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