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의 차기 전차 K-2(흑표)에 들어가는 국산 파워팩(엔진+변속기)의 시험평가가 독일산 수입품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감사원은 10년간 파워팩 국내 개발을 진행하고도 독일 제품 수입을 결정한 육군 책임 장성에 대해 형사고발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본보 2일자 1면 보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산 파워팩 연구개발사업을 관리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는 7일 "K-2 국산 파워팩 개발시험평가(DT)에서 누적 주행거리가 9,643㎞, 운용시험평가(OT)에선 3,328㎞인 전차를 정비해 사용했다"고 밝혔다. 전차 등 궤도차량의 수명주기는 9,600㎞로 이처럼 수명이 다 된 노후 전차를 활용할 경우 파워팩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산 제품 평가 때는 신차를 활용했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전차 시제품을 별도 생산하지 않아 기존 제품으로 개발평가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 개발업체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또 수명주기를 넘긴 전차라 해도 차체만 낡았을 뿐 기동에 쓰이는 부품은 모두 새 것으로 교체됐기 때문에 파워팩의 성능을 평가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운용평가를 맡고 있는 육군과 업체 측 주장은 다르다. 김헌수 육군 시험평가단 기동시험과장은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통합당 진성준 의원의 질의에 대해 "최종 성능을 정확히 확인하려면 신차로 시험평가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파워팩 변속기 개발 업체인 S&T중공업의 박재석 사장도 이날 "전차의 현수(懸垂)장치에 계속 문제가 생겨 수평 유지가 안 된다"며 파워팩 성능평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토로했다.
게다가 당국은 시험평가에 쓰인 전차의 주행거리에 대해 수차례 말을 바꿔 비난을 사고 있다. 당초 개발평가에 사용된 전차가 5,500㎞를 주행한 것이라고 밝혔던 ADD 관계자는 이후 정비 중 주행한 거리가 누락됐다며 8,800㎞라고 했다가 다시 9,643㎞가 맞다고 확인했다. 개발평가 직전인 지난해 11월 7일 K-2 체계개발업체인 현대로템이 전차를 인수할 때 작성하고 ADD가 확인한 정비일지에는 1만228㎞가 적혀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파워팩을 도입키로 결정한 것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말했다.
이밖에 국산 파워팩에 적용된 8시간 연속가동과 100㎞ 연속주행 평가가 수입 파워팩에는 적용되지 않는 등 국산 파워팩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독일제 파워팩은 2007~2008년 시험평가 결과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국산 파워팩은 2009년 2월 시작된 시험평가 과정에서 8시간 연속가동 중 엔진 고장을 일으키는 등 124건의 결함을 노출, 합격 판정을 못 받았다.
방사청 관계자는 "독일 제품에 대해서도 연속 주행평가는 아니지만 100~180㎞ 운행평가는 했다"며 "해외 파워팩 시험평가 당시에는 연속 주행평가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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