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파리 체재기간은 1886년 3월 초부터 1888년 2월 중순까지 겨우 2년쯤 된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색채와 구도에 새로운 눈을 떠 많은 걸작을 낳았다. 10년 만에 다시 간 파리에서 그가 처음 봉착한 것은 충격과 고통이었다. 걸작이라고 자부하던 '감자 먹는 사람들'을 폴 세잔은 미치광이 그림이라고 비웃었다. 파리 시대 초기작에 네덜란드 시대의 어두운 색조가 지배적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 하지만 그는 결국 파리의 영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인상파 신인상파 화가들과 접촉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압생트라는 싸구려 술에 빠져 살면서 자기만의 그림을 모색해 나갔다. 특히 10여 년 전 파리에 처음 소개된 일본 우키요에(浮世繪) 판화의 영향이 컸다. 우키요에를 그대로 모사하기도 했던 고흐는 단순하고 선명한 색조와 평면적 처리 방법을 익혀 나갔고, 그의 팔레트는 차츰 밝아졌다. 주로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그려온 그에게 색채나 구도는 소재만큼 중요해졌다.
■ 겨우 1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린 고흐는 자화상을 36점이나 남겼다. 이 중 27점이 파리 시절의 작품이다. 이 시기의 마지막 자화상 '회색 펠트모자를 쓴 자화상'은 그의 친구 에밀 베르나르가 '성난 얼굴'이라고 언급했지만, 대담한 붓질과 강렬한 색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파리 시절의 역작으로는 '탕귀 영감'을 언급해야 한다. 화구상 탕귀를 고흐는 마치 부처님처럼 그리고, 배경에 일본 기생과 풍경이 담긴 우키요에를 배치했다. 나중에 로댕이 구입한 작품이다.
■ 8일부터 내년 3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반 고흐 in 파리'전에서는 '탕귀 영감'과, 앞서 말한 자화상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5년 전에 열렸던 반 고흐 전시회가 총론이며 개설서였다면 이번 전시는 심화학습과정이라 할 만하다. 파리는 모든 예술가들의 고향이다. 차가운 코발트 블루를 통해 우울과 고독을 극한대로 표현했던 피카소(1881~1973)의 청색시대(1901~1904년)도 파리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예술가들과 파리의 의미를 음미하며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