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당ㆍ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11ㆍ6 합의'로 연말 대선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의 양자 대결 구도로 전환했다. 단일화 협상ㆍ이행 과정에서 진통이 있더라도 불발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문ㆍ안 두 후보의 결의가 워낙 강고하다. 말이 '7개항'이지, 구체성을 띤 합의는 '새 정치 공동선언', 후보등록 이전의 단일화, 투표시간 연장 공동 캠페인 등 3개항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단일화에 대한 마음가짐이고, 실은 '새 정치 공동선언'과 '투표시간 연장 공동 캠페인'조차 그 주변 장치다.
이로써 양측의 협조적 단일화가 실패하는 경우에도 문ㆍ안 두 후보가 따로 완주하는 상황은 상정하기 어려워졌다. "정치는 생물"이라지만, 이토록 큰 소리로 국민 앞에 다짐한 마음가짐을 저버리기는 힘들다. 주어진 단일화 시한, 나아가 대선까지의 기간이 국민이 '11ㆍ6 합의'를 잊거나 새로운 상황의 정당화 명분을 납득하기에는 너무 짧다. 단일화 과정이 극복 불능의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 포기로 결과적 단일화는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변수로 여겨져 온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상수로 굳어지는 것은 유권자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인간의 뇌는 도박이나 게임처럼 불확실 상황을 즐기고, 바로 그 때문에 모험과 혁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개체적 즐거움보다는 자신과 가족의 먹고 사는 문제에서 역설적 기쁨을 느껴야만 하는 생활인은 단순한 상황에 정서적 안정을 느끼기 쉽다. 볼거리가 줄어서 재미가 덜한 유권자도 적지 않겠지만, 참여 행동을 꺼리는 구경꾼의 특성상 그 가운데 진짜 유권자는 많지 않다.
생활인 유권자들의 단순성 선호는 지지 후보 선택이 손쉽기 때문이다. 공약과 정책의 신뢰도를 그 동안의 정치 경력 등에 비추어 평가하고, 그 가운데 자신의 처지 개선에 도움이 될 듯한 후보를 고르면 된다. 후보 단일화의 결과로 여야 유력후보 간의 1대1 토론이 본격화하면 국가적 과제에 대한 양측의 해결방안이 어떻게 다른지, 자신의 삶과 어떤 곳에서 이어질지 가늠할 수 있다.
현재까지 국민 삶과 직결된 쟁점은 적잖이 형성됐다. 일자리 늘리기, 경제 민주화 핵심 수단,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할 증세 방법론, 대북 협력ㆍ화해 및 안보대책 등이다. 그런데 그에 대해 여야 후보가 보인 해법은 내향적 인식에 그쳤다. 국가적 난제가 대외 환경과 얽히지 않은 게 없다는 점에서 여간 의아한 게 아니다. 대북ㆍ안보 정책은 물론이고, 일자리나 세금 등 먹고 사는 문제는 내향적 대책만으로는 풀기 어렵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무역기여도가 2010년에 53%를 넘었고, 지난해 무역의존도(무역액/GDP)가 약 97%에 이른 '국제국가'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그렇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어제 재선에 성공, 거대 미국호의 방향타를 4년 더 잡게 됐다. 지난 3월 재등장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길게는 12년 동안 러시아를 '유라시아'국가로 이끌 전망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오늘 개막하는 당대회를 시작으로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을 끌고 간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의 변화도 다양한 전망을 낳고, 내년이면 민주당이 자민당 주도 연립정권에 자리를 넘겨줄 일본의 변화 방향도 관심거리다.
각국의 정치변화가 중심이지만, 그 영향은 결코 정치환경의 변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가 '유라시아 국가'가 되기 위한 극동지역 개발, 북한의 개혁ㆍ개방 등이 좋은 예다. 이런 현실을 국민에 일깨우기 위해, 아니 후보 스스로의 정책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후보들의 외향적 인식이 서둘러 보완돼야 한다. 단일화 이후에 이뤄질 첫 TV토론에서 가장 먼저 국제감각을 확인하고 싶다. 그것이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국민적 먹거리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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