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6시 5분쯤 경기 파주시 금촌동의 한 아파트에 화마(火魔)가 덮쳤다. 이사할 곳을 알아보러 부모가 잠시 나간 집에는 장애가 있는 남매만 남아 있었다. 소방관들이 18분 만에 불을 끄고 방에 들어갔을 때 정이 돈독했던 남매는 꼭 붙은 채 함께 쓰러져 있었다.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누나 박모(13ㆍ중1)양은 9일 만에 눈을 감았다.
인제대 일산백병원은 7일 오후 5시 34분쯤 중환자실에 있던 박양이 유독가스 중독에 의한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박양 남매는 아파트 화재 때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유독가스를 마신 뒤 의식을 잃어 그 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사투를 벌여왔다. 의료진의 노력으로 박양은 잠시 의식을 회복하기도 했지만 며칠 전부터 다시 혈압이 떨어지고 뇌파가 약해지는 등 상태가 악화됐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남동생(11ㆍ초5)도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의식을 찾을 수 있을 지 의료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양 아버지는 이날 “안타깝게도 큰 애가 먼저 하늘나라로 갔고 막내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오열했다.
박양은 주의력결핍장애(ADHD)가 있었지만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남동생과 함께 파주의 한 공립특수학교에 다녔던 박양은 동생을 유난히 아꼈다. 항상 밝은 표정을 보였던 박양은 대변을 못 가리는 동생 옷을 빨아주거나, 거리에서는 손을 꼭 잡고 다닐 정도로 보살핌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돈독한 정이 알려지며 화재사고 뒤 주변에서는 남매의 회복을 바라는 온정이 잇따랐다.
장애인단체와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새누리장애인부모연대 파주지부 회원들은 6일 파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모가 일을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화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실질적인 장애인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파주=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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