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외국 국적을 취득해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시킨 부유층 학부모들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하지만 구속 기소된 학부모가 1명에 불과한 데다 기소 대상자 상당수가 벌금형인 약식 기소 처분돼 부실 수사 논란과 함께 엄벌 의지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지검 외사부(부장 김형준)는 사문서 위조와 업무 방해 등 혐의로 학부모 권모(36·여)씨를 구속하고, 나머지 학부모 4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불구속 기소된 46명 중 31명은 법정에 서게 되며, 15명은 약식 기소됐다. 검찰은 또 박모(45)씨 등 부정 입학 알선 브로커 3명과 여권 위조 브로커 1명도 구속했다. 부정입학한 학생은 모두 53명이다.
부유층의 삐뚤어진 교육열
검찰이 이번에 기소한 학부모들은 재벌가 4명과 상장사 대표 및 임원 4명, 중견기업체 경영 21명, 의사 7명 등 부유층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셋째 딸이자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둘째 며느리,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의 셋째 며느리, 이정갑 전 현대자동차 부회장 며느리,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 며느리, 나승렬 거평그룹 전 회장 딸 등이 포함됐다. 충청지역 중견기업 대표의 며느리 권씨는 브로커에게 1억원을 주고 영국 등 3개국 위조 여권을 넘겨 받아 딸을 서울의 외국인학교 2곳에 편·입학시킨 혐의로 유일하게 구속됐다. 중견기업체 사장의 며느리이자 자녀 3명을 모두 원정 출산한 박모(36)씨는 외국인학교 관련 법이 바뀌면서 셋째부터 부모의 외국 국적이 필요하자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의 여권을 위조해 사용했다.
심지어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병원장인 남편과 위장 이혼한 뒤 에콰도르 국적의 외국인과 위장 결혼, 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위조한 경우도 있었다. 또 자녀를 2명 이상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시킨 학부모도 12명이나 된다.
솜방망이 처벌 논란
약식 기소한 15명에 대해 위조된 여권이 진짜인 줄 알았거나 실제 사용하지 않은 경우여서 죄질이 약하고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부유층의 도덕성과 관련한 사회적 파장이 컸던 만큼 기소를 통해 정식 재판에서 법정의 판단을 받아보는 게 낫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신분 고려 없이 범행의 고의성에 중점을 둬 사법 처리 수위를 정했다"며 "기소된 학부모에 대해서는 모두 징역형을 구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ㆍ사문서 위조 및 행사, 업무 방해죄의 형량은 5~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또 사건의 핵심에 있는 외국인 학교의 직무유기 여부나 브로커와의 연계 부분에 대해 검찰은 확실한 단서를 잡지 못해 학교관계자는 한 명도 기소하지 못했다.
귀족학교로 변질된 외국인학교
부유층들이 법을 무시하고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려 한 이유는 해외 명문대 진학의 지름길로 여긴 데 있다. 외국인보다 한국 학생이 많은 외국인학교가 전국 51곳 중 12곳에 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수사에서 56건의 부정 입학 사례가 드러난 외국인학교는 서울·경기·인천·대전 등 9곳. 수도권지역만 보면 전체 33곳 중 8곳(24.2%)에서 부정 입학 사례가 적발됐다. 이들 학교의 건물 신·증축에 투입된 세금만 2,000억원에 이르지만 입학절차를 검증하는 공적인 감시시스템은 어디에도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일부 부유층의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심, 금전만능주의, 도덕 불감증 등에서 비롯됐다"며 "외국인학교의 허술한 입학과정을 제대로 들여다 볼 감시망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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