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000억원에 가까운 평택 주한미군기지 내 보안시설 신축 비용을 미국에 대주면서 국내법상 예산편성 원칙을 어겨가며 미 측 요구대로 지급 보증 등을 통해 3년치 예산을 통째로 확보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나친 저자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재정당국에 따르면 최근 국회에 제출된 내년 국방부 예산안의 '주한미군기지이전특별회계' 세출 부분에 '국고채무부담행위' 근거 규정이 신설됐다. 국고채무부담행위는 국가가 사업 예산을 당장 편성키 어려운 경우 차후 예산안에 포함시키겠노라고 약속하는 것으로, 현행 국가재정법상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정부가 이 규정을 만든 것은 미 측이 공사 발주 해에 총 사업비를 확보하도록 한 미국 법에 따라 평택기지 보안시설 공사비 3년치 전액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가재정법은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는 건설 공사는 연도별 예산을 분할 편성한다. 하지만 미 측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일단 내년에 단독시설 3곳과 부속시설 1곳을 짓는 데 필요한 1,546억원은 현금으로 제공하고, 2014, 2015년에 필요한 단독시설 공사비 2,809억원은 은행 신용장(LC)을 발급받아 지급을 보증하기로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부가 외국에 예산을 주기 위해 단년회계 원칙을 깬 것은 처음"이라면서도 "한미 양국 법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선택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거액을 현금으로 주는 것도 모자라 국내법까지 어긴 것은 과공(過恭)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균형재정이 강조되고 수많은 국내 다년도 사업들이 최초 연도 예산만으로 사업에 착수하는 상황에서 사업 집행 가능성도 따지지 않고 국내법 원칙까지 양보하며 국고채무부담행위를 설정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평화운동단체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유영재 미군문제팀장은 "사용 내역조차 파악하지 못할 돈을 현금으로 안겨주면서도 한미 동맹을 이유로 국내법 체계를 왜곡하면서까지 미 측 요구를 관철시켜준 것은 굴욕"이라고 혹평했다. 정부는 현재 서울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기지를 2016년까지 경기 평택시로 옮기는 사업을 추진 중이며, 여기에 들어가는 사업비 8조9,000억원 전액을 스스로 부담한다는 방침이다.
2004년 말 국회 비준을 받은 용산미군기지이전포괄협정에 따르면 평택기지 내 신축 시설 중 일부(보안시설 5개소)의 경우 설계부터 완공까지 모든 절차를 미 측이 진행하되 경비 전액을 한국 측이 현금으로 제공하도록 돼 있다. 보안시설은 내부구조 등이 다른 나라에 알려지지 않도록 반드시 자국 업체가 비밀리에 짓도록 한다는 게 국방부 측 설명이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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