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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연금, 부자 피난처냐 은퇴자 보루냐

입력
2012.11.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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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000만원 짜리 정기예금을 만기 해약하기 위해 은행을 찾은 직장인 김모(53)씨는 직원한테서 즉시연금 가입을 권유 받았다. 연내 가입하면 바로 다음달부터 내야 하는 이자에 대한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었다. 김씨는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10여 년이나 남았고 개인연금은 시기를 놓쳐 들지 못한 상황이라 노후 걱정을 하던 차였다. 김씨는 예금 해약금과 그간 모아둔 종잣돈을 합쳐 1억원을 즉시연금 상속 30년형으로 들었다. 그는 "공시이율 4.4%를 기준으로 수령기간 동안 매달 30만원 안팎을 받게 된다.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 즉시연금은 국민연금 수령 시기까지의 공백을 메워주는 좋은 수단인데 내년부터 과세한다고 하니 서둘러 가입했다"고 말했다.

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즉시연금(목돈을 한번에 맡기고 현금을 연금처럼 매달 타는 보험상품)에 대한 정부 과세 방침이 8월 발표되자, 생명보험사와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예치 금액에 따라 과세 여부를 달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거액 자산가들의 조세피난처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년 가입자부터 목돈 예치 후 이자와 원금을 매달 나눠 받는 즉시연금 종신형은 연금소득세(5.5%)를, 이자만 받고 원금은 후손에게 물려주는 상속형은 이자소득세(15.4%)를 내도록 할 예정이다. 하지만 과세 취지와 달리 가입자 대다수는 부자가 아니라 노후 준비가 절실한 은퇴자와 중산층이라는 게 생보사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한 대형 보험사가 7~9월 자사 즉시연금에 가입한 9,200건을 분석해본 결과 예치금 3억원 이하가 전체의 81%를 차지했다. 이중 1억원 초과~3억원 이하가 53%로 가장 많았고 5,000만원 초과~1억원 이하가 22%, 5,000만원 이하가 6%였다. 해당 보험사 관계자는 "8월 정부 세제안 이후 가입한 고객들이 포함된 것임에도 3억원 이하가 80%를 넘는다는 건 즉시연금이 주로 중산층 또는 은퇴자를 위한 상품이란 증거"라고 말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연맹 위원 역시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즉시연금은 중요한 노후 대비책 중 하나일 텐데 무조건 과세하기보다 예치 금액별로 차등화해 고액은 고율의 세금을 매기고 일정금액 이하는 비과세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 가입 대상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487만7,000명 중 가입기간 10년 이상으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의 45.6%에 불과했고, 가입기간을 채우더라도 월 최저임금 수준(올해 기준 95만7,000원)에도 못 미치는 연금을 받는 인원이 78%나 됐다.

하지만 정부는 과세 형평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가 확고하다. 지난달 말 국정감사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른 금융상품과의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고액의 비과세 기준을 설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는 연200만원 이하 중도인출과 장기요양 등에 대해선 예외조항을 뒀고, 즉시연금이 아니더라도 내년 출시되는 10년 만기의 비과세 재형저축을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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