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에서 한 직능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대한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라는 중소인쇄업체 종사자들이 모임입니다. 이들은 "정치권이야말로 경제민주화에 역행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공직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법정 홍보인쇄물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지요. 사실 선거철엔 많은 홍보인쇄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쇄업계에선 '선거특수'란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합니다. 각 정당들이 몇몇 대형 인쇄업체들에 일감을 몰아주는 탓에 영세한 중소 인쇄소들은 오히려 개점휴업 상태라는 겁니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지난 17대 대선과 19대 총선 당시 30억원대의 홍보물 기획ㆍ제작 업무를 특정 업체에 맡겼습니다. 민주당 역시 대형 인쇄업체 두 곳이 홍보물 전량을 수주했다고 합니다. 정치권의 '일감 몰아주기'는 아주 오랜 관행이라는 게 이쪽 업계의 얘기입니다.
연합회는 지난달 홍보인쇄 업무를 중소업체에도 맡겨달라는 건의서를 각 후보 캠프에 보냈습니다. 연합회가 물량을 수주하고 인구비례에 따라 산하 11개 지역조합의 인쇄소들이 홍보물을 찍어 해당 선거관리위원회에 납품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지역 인쇄소들이 홍보물을 제작하면 시간도 단축하고 장거리 운반에 따른 파손ㆍ훼손 위험도 적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합회 제안에 응답한 캠프는 한 곳도 없다고 합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한 후보 캠프는 최근 선거홍보물 입찰 공고를 냈는데, 선정기준을 비공개로 한데다 "입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단서까지 달았다고 하네요. 연합회 관계자는 "이런 조건이라면 어차피 대형인쇄업체가 물량을 싹쓸이하게 돼 있다"고 푸념했습니다.
중소인쇄업자들이 더 뿔이 난 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주장 때문입니다. 각 후보, 각 정당이 앞다퉈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중소 인쇄업체들을 외면한 채 대형업체에만 일감을 몰아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정치권이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대체 누구를 위한 경제민주화인지 모르겠다"는 중소인쇄업자의 하소연이 괜한 하소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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