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화가의 개인전이 있어 삼청동 갤러리에 다녀왔다. 하루 연명에 바쁜 가난한 예술가라 예정된 날짜로부터 2년이나 미룬 뒤에야 전시를 오픈하게 되었다는 녀석은 퍽이나 초조한 표정으로 l뒤를 따라붙기에 이르렀다.
다 늦은 저녁의 한산한 갤러리, 녀석과 나의 발소리만이 울림 깊게 전해지는 가운데 저승사자가 난무하고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젊은이들이 몽롱한 눈빛으로 어디 먼 데를 응시하는 음산한 기운의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흔해빠진 상술이나 뺀질거리는 요령 같은 건 눈꼽만큼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림 좀 팔렸어? 누나 전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어머 얘, 돈이 있어야 물감도 사고 여행도 다녀서 영감도 얻지. 하기야 애초부터 이름값에 그림값에 계산기처럼 영특했다면 죽음의 문제를 가지고 이처럼 변화구도 아닌 직구로 정면 승부를 했겠는가. 조그마한 꽃가마도 아니고 큼지막한 꽃상여라니, 붓질이 워낙 좋은 친구라 그 터치는 말할 것이 없었으나 주제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자꾸만 할말이 샘솟았다. 행복한 나의 집 즐거운 우리 집에 걸기에는 좀 거시기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가로젓는 녀석, 어쩌면 내가 기대한 건 녀석의 그러한 자기 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갤러리를 나오며 녀석 모르게 콕 찍어놨던 그림이 얼마인지를 물었다. 가만, 이 돈이면 시 한 편 값의 몇 배더라. 이럴 땐 참 내가 재벌이고 싶다니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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