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울 게 많은 국사를 잘 볼 수 있을지…."
류옥이(78)씨는 요즘 잠이 잘 안 온다. 8일 예정된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러야 할 생각 때문이다. 특히 중요사건 발생연도 등 암기할 게 수두룩한 국사는 가장 큰 골치거리. 요즘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는 그는 "어린 학생들과 경쟁하는 게 어렵지만, 실수하지 않고 평소 실력대로만 수능을 치렀으면 좋겠다"며 소망했다.
류씨는 어릴 적 학업의 기회를 놓친 중ㆍ장년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인 서울 마포구 일성여중고의 수능 응시자 185명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다. 그런 류씨가 인터넷 강의와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요즘 수험생에 맞서는 방법은 오로지 외우고 또 외우는 '반복'뿐이다.
처음 알파벳도 잘 몰랐던 영어는 발음을 한글로 적어 따라 하며 단어를 암기하는 방법으로 지금은 간단한 회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국사는 옛날 이야기처럼 편히 듣되, 선생님 설명을 일일이 교과서나 공책에 필기해 외우고 또 외운다. 하지만 고령인 탓에 오래 앉아 있기도 버겁고, 일반 수험생과 실력 차가 커 수능시험에서는 국어(언어) 국사(사회탐구) 한문(제2외국어) 세 과목만 치를 예정이다. 류씨는"한문은 자격시험에서 최저인 6급부터 시작해 최고 등급인 특2급을 받았기에 자신 있다"고 밝혔다.
11남매 중 일곱째인 류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경남 사천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 해방과 함께 일본인 교사가 학교를 떠나 휴교하는 바람에 학업을 멈췄다. 그러나 생전 "대학 다닐 때가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미국 유학파인 남편의 말에 항상 대학 진학을 꿈꿔왔다. 2005년 만학도 학력인정기관인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여중고를 알게 돼 7년 넘게 학업을 해오며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류 할머니는 "학교 다닐 때 일어를 배워 잘 알기에 일어과나 일문과를 가서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또 담임교사가 추천한 사회복지학과 진학도 염두에 두고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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