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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영의 덧차원 일기장] 이론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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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영의 덧차원 일기장] 이론적이야!

입력
2012.11.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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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론적이야!"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느껴지는가. 아무래도 칭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이 말은 흔히 '현실과는 동떨어졌다'라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론은 현실과 반대되는 것일까? 이론에 상대되는 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여러 가지 답이 나올 것이다. 방금 말한 것처럼 현실이나 실제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실천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모두 다 왠지 이론은 실제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러면 대체 이론이란 왜 필요한 거람?

과학자에게 이론에 상대되는 말은 실험, 혹은 관찰이다. 특히 물리학자는 뚜렷하게 이론가와 실험가로 나뉘어서, 이론가는 드라이버도 한 번 쥐어보지 않고, 실험가는 어느 정도 이상 복잡한 계산은 하려 들지 않는 일조차 있다. 그러면 이때도 이론은 현실, 혹은 자연 현상에 상대되는 개념일까? 이건 아무래도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이론이 자연 현상 그 자체가 아니듯, 실험 역시 자연 현상 그 자체는 아니다. 사실 20세기 이전에는 실험적 결과나 자연 현상의 관찰 결과를 객관적 지식으로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심지어 실증주의자들은 이론은 그냥 경험을 일반화한 것이라고 여겼다. 객관적 사실은 이론으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고, 이론은 그것을 가장 경제적으로 기술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자들은 이론과 실험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철학자 파이어아벤트는 이론은, 특히 보편 이론은 세계에 관한 모든 것을 포괄해서 개념화하기 때문에 관찰한 것을 기술하는 데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고 실증주의자들의 견해를 비판했다. 즉 관찰을 하기 위해서는 이론을 전제하고, 이론적인 개념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물리학 이론이 더욱 더 보편적인 것을 지향하고, 실험이 점점 더 정교해짐에 따라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중요해졌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젊은 하이젠베르크와의 대화에서 "사람이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론"이라고 통찰한 바 있다.

얼마 전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에서 지금까지 발견한 입자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고, 이 입자는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힉스 보존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 발견을 보도하면서 매체에서 흔히 과학자들에게,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묻곤 한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사람들이 새로운 발견이란 이론에 앞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을 느낀다.

사실, 진짜 새로운 발견이란 대부분의 경우 우연히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이 나오고, 이론이 점점 더 보편적인 형태로 변하는 것이 자연과학의 발전 과정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힉스 입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 이유는, 힉스 입자가 발견되어 새로운 연구의 방향이 열리는 것은 물론 맞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의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힉스 입자가 발견되어도 단기적으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왜냐하면 힉스 입자 자체는 표준모형이라는 이론에서 이미 예견하고 있는 존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의 입자물리학 이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오로지 이론의 힘만으로, 그러니까 내적인 논리의 정합성만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존재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 물리학 이론이란 자연 현상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자연 현상은 이론과 실험 양쪽 모두에 다 들어있다고 해야 옳겠다.

그래서 이론적이라는 말이 과학자에게는 현실 감각이 없다는 말로 들리질 않는다. 사실 원래 이론은 그런 것이 아닐까? 이론이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이론이 허술해서거나, 이론을 모르고 남이 써준 말을 따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옳은' 이론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우리 사회는 이론이 부족해서 문제지 과잉이라서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니까 좀 더 이론적이 되자.

경상대 물리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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