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문제가 연일 언론을 장식한다. 직접적 원인 제공자인 가계와 금융권은 물론 금융당국과 중앙은행, 그리고 관련 연구소들까지 가세해 조사 결과를 쏟아 내고 있지만 그 내용은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다. 특히 하우스푸어 규모 추정치가 제 각각이다. 하우스푸어란 다소 무리하게 은행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했지만 집값 하락으로 빚더미에 앉게 된 '빚더미 주택소유자'를 말한다. 우리 정부의 공식 기준이 없다 보니 이들의 숫자는 적게는 7만 가구, 많게는 198만 가구에 이른다. 미국연준 기준인 DSR(소득대비원리금상환부담비율) 40%를 적용할 경우 약 70만 가구로 추정되지만 이 역시 추정치일 뿐이다. 정확한 수치가 없다. 하우스푸어 문제와 함께 자영업자 부채 문제도 발등의 불로 지적된다. 하지만 그 규모와 함께 사용처 등의 파악이 어려워 다양한 추산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 통계의 정확성 논란 문제로 이어진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해법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한 금융위와 금감원의 대응 방안에서도 적지 않은 온도 차가 감지되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금융위는 무리한 정책은 긁어 부스럼으로 오히려 문제를 키울 소지가 있으며, 최소한 지금은 정부가 나설 때는 아니라는 입장인 듯하다. 언제까지 지켜볼 것이고 또 어떤 국면에서 어떻게 개입한다는 조건부 정책이 제시된 바도 없다. 시간을 벌다가 다음 정권으로 이관한다는 방침일 수도 있으나, 문제해결을 서두르는 것이 정리비용 최소화의 지름길이라는, 과거 수 차례 위기에서 얻은 교훈에는 위배된다. 반면 금감원은 프리워크아웃과 신탁 후 재임대 등의 금융권 공동 추진을 제시하면서 문제해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감독당국의 불필요한 개입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문제가 있고, 재량보다 규정에 의한 규제가 바람직하다는 원칙에 반한다는 문제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두 감독당국 간의 입장 차이는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들 두 기관의 시각과 입장 차는 이들이 수행하는 금융정책 및 감독업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선정국 또는 새 정부 들어서 불거질 금융감독체계 개편작업에 시사하는 바 크다. 우선 금융위는 금감원을 지시ㆍ통제하고 감독정책을 관장함으로써 금융감독업무 전반을 총괄하면서 금융산업 발전과 육성을 이끄는 금융산업정책 업무를 함께 관장한다. 금융위는 이 때문에 금융산업을 옥죄는 감독방안 마련에 적극성을 띠기 어려워, 오히려 관망하는 성향을 지니는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 금감원은 금융감독만 신경 쓰면 되므로 그만큼 의사결정이 신속할 수 있고, 조기시정조치 등의 추진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 위험관리 유인이 보다 확실한 금감원이 문제해결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은 감독체계가 금융산업정책과 분리되어야 함을 웅변하는 좋은 예가 된다.
한국은행은 또 어떤가. 한은은 최근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가계부채가 단기간에 대규모로 부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유럽위기가 악화하거나 국내 경제 부진이 심화하면 가계부채 부실화가 촉발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급박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번 한은법 개정으로 추가된 '금융안정 유의'에 충실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번 가계부채 문제에 관한 한 그 동안 한은의 기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물가안정보다 성장 지원을 목표로 했던 저금리 정책이 신용팽창을 초래한 결정적 요소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연일 언론이 경고를 보내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를 감독당국의 미시정책만으로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 중앙은행 통화정책과의 조율이 필요하다. 한은을 포함하는 감독유관기구들 간 협의를 법제화하는 금융안정위원회(가칭) 설립이 향후 감독체계 개편 논의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이유다. 끝으로 대출상환 능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고객들에게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을 공급해 쏠림 현상을 초래한 금융기관들의 약탈적 대출관행과 이로부터 고객들을 보호하기 위한 금융소비자보호 내지 금융기관 행위규제를 건전성 감독업무로부터 분리하는 것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과제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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