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따지고 보면 모든 소설이 후일담인데 70,80년대 얘기 지겨워하는 태도 이상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소설이 후일담인데 70,80년대 얘기 지겨워하는 태도 이상해"

입력
2012.11.04 12:08
0 0

과거와 현재 겹쳐지는 서사로 운동권들의 상처와 비극 그려내"격변기에 겪는 보편적 고뇌 다뤄"

권여선(47)은 기억에 대한 집요한 탐색을 통해 일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데 탁월한 솜씨를 지닌 작가다. 탄탄하고 선명한 문장, 인간관계의 허실을 꿰뚫는 통찰을 통해 작가는 달콤 쌉쌀한 생의 진실을 묘파해왔다. 등단 15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장편소설 '레가토'는 1979년 '카타콤'이라 불리는 대학 반지하 써클룸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낸 인물들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작가는 "80년 광주를 다루고 싶은 마음에서 1979~80년을 배경으로 썼다"고 말했다.

"80년대 학번을 지배한 정서가 광주였고, (83학번인) 저도 그 영향권에 있었어요. 작가가 되기 전부터 언젠가는 꼭 광주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야기는 서클 회장이었던 박인하가 후배 신진태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각각 유명 정치인과 출판기획사 사장이 됐다. 인하는 보좌관 준환과 함께 대학동기인 국문학과 교수 이재현과 진태를 다시 만난다. 옛 학우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경은 대학 시절로 옮아간다. 이들은 학기 초 처음으로 유인물을 뿌리는 데 참여한 뒤 여름의 농촌활동과 합숙, 가을의 첫 데모를 거치며 운동권 투사가 돼간다.

그 사이에는 오정연이 있다. 정연을 흠모한 신입생 준환은 인하에 대한 열등감을 끝내 떨쳐내지 못했고, 인하는 정연에게 행한 충동적이고 치명적인 폭력을 평생의 죄책감으로 품어왔다. 정연이 어느 날 영문을 알 수 없이 실종되고 30여 년 후 어느 날, 그들 앞에 정연의 동생 하연이 나타나 언니의 흔적을 수소문하면서 그들의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이 서로 얽히고 이어진다.

작가는 "소설을 쓸 때 현재와 과거가 다른 문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등장 인물들의 용어, 말투를 각 장마다 다 다르게 썼다. 덕분에 과거의 장만 묶어놓으면 7,80년대 소설로 읽히고, 현재만 묶어놓으면 2000년대 소설로 읽힌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유신정권의 몰락, 신군부 쿠데타,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격변기를 무대로 저마다 비밀처럼 간직하던 정연과의 추억과, 그녀 혼자 감당해야 했던 비극적 사건들이 차례로 드러난다. 더불어 묘연하기만 했던 정연의 자취도 차츰 선명해진다. 전형적인 후일담 소설로 읽히는 이 소설에 대해 권씨는 "따지고 보면 모든 소설이 '어떤 일이 일어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후일담인데, 7,80년대 일만 다루면 후일담이라고 하면서 지겨워하는 태도를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는 80년 광주를 다루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한국전쟁이나 4ㆍ19혁명을 다루듯이, 보편적으로 격변의 시기에 인간이 겪는 고뇌, 갈등, 절망과 그리움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이런 일을 했다'는 식의 과잉된 자의식이 없는 점, 아마 그게 여타의 후일담과 다른 소설일겁니다."

소설의 제목 '레가토'는 앞선 음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다음 음을 시작하는, 음과 음 사이를 이어서 연주하는 주법을 말한다. 권씨는 작품 말미 작가의 말에서 '소멸하는 앞의 음과 개시되는 뒤의 음이 겹치는 순간의 화음처럼, 나는 이 소설이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시간이 겹쳐 뭔가를 만들어내는 레가토 독법으로 읽히기를 소망한다'고 썼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