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개 새 책이 나오면 문단 선후배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하여 보내주는 것을 어떤 관례로 알아온 것이 사실이다. 책을 받았으니 책을 주는 게 너무나 당연한 분위기라 오히려 친한 동료라 할 때 그의 책을 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러는 사이 서가에는 점점 주인의 필체를 몸에 새긴 탓에 차마 버릴 수 없는 책들이 쌓여만 간다. 누구누구 평론가 선생님께 어쩌고저쩌고 감사하며 드립니다, 라고 정성을 다해 사인을 해놓은 내 첫 시집을 한 학생이 인천의 한 헌책방에서 기념이랍시고 사가지고 왔을 때 나는 굵고도 짧은 욕설을 추임새처럼 내뱉었다지.
치욕도 분노도 아닌 어떤 쓸쓸함의 감정 끝에 냄비받침이든 군불용 불쏘시개든 내 책이 곧 내가 아닌 것을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분간하기 시작한 요즘, 하루는 이런 밤을 만났다.
한 기자가 책을 출간하며 파티를 벌였는데 글쎄 그 자리에 초대된 지인들이 한 권 두 권 많게는 수십 권에 이르기까지 제 주머니 사정에 따라 흔쾌히 책을 사주더란 말이다. 촛불 아래 그 풍경이 너무도 따스해서 물었더니 반문하는 기자의 지인. 책 쓰느라 고생했는데 이런 책을 어떻게 공짜로 받나요? 글 쓰겠다고 밤잠 못자고 고생깨나 했을 텐데 안쓰럽잖아요. 새 시집 나왔는데 왜 안 보내느냐고 마치 맡겨놓은 사람처럼 후배를 닦달하던 나, 심보가 그 모양인데 전국의 헌책방에 모인 내 시집 어디 한두 권이겠냐고.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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